(서울=연합인포맥스) 공무원을 공복(公僕)이라 부른다. 영어로는 'civil servant'로 풀이된다. 쉬운 말로 공공의 하인이라는 뜻이다. 공화국 체제라면 그 하인의 주인은 국민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곳간을 맡은 일부 공복이 주인을 가르치려 하면서 파열음을 일으키고 있다.

주인의 재산을 충실하게 지키는 게 곳간지기의 임무다. 하지만 곳간지기는 주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때는 바로 재산을 반출해야 한다. 재산에 대한 처분권은 최종적으로 주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주인이 과도하게 재산을 탕진하지 못하도록 제어하는 것은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책무일 뿐이다.

여태까지 대한민국의 곳간 지기인 기획재정부는 이러한 관리자의 책무를 아주 훌륭하게 해냈다. 국민총생산대비(GDP)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40.1%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물론 전 세계에서 독보적인 재정 건전성을 가진 나라가 됐다. 그만큼 곳간이 튼튼하다는 뜻이다. 선진국 가운데 재정건전성이 가장 뛰어나다는 독일도 GDP대비 정부부채 규모가 70.3%에 이른다. 지난 2018년 기준으로 OECD 회원국의 정부부채 비율 평균은 109.2%다.

이런 상황에서 곳간지기가 쓸 돈이 없다고 말한다면 몽니와 다를 바 없다. 몽니가 아니라면 주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만큼 곳간을 비울 이유가 없다는 점을 설명해 줘야 한다. 기재부는 곳간지기 역할도 하지만 경제전망을 바탕으로 경제운영에 대해서도 전권을 가진 기관이기 때문이다.

기재부가 곳간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전에 지금의 경제상황에 대한 진단부터 내놔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우리가 처한 경제 상황이 어느 정도로 엄중한지 국민은 알 길이 없다. 주인인 국민이 납득을 해야 기재부가 보여주는 대응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재정건전성이 경제상황을 우선할 정도라면 주인인 국민은 고난의 행군을 이어갈 각오가 돼 있다. 1998년 외환위기를 거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훌륭하게 극복한 국민이다.

지금의 경제 상황이 이벤트성 충격이 아니라면 기재부의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코로나19에 따른 충격파가 3차 세계대전에 버금갈 정도라는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의 참전국가인 미국, 영국, 독일, 일본은 전시 체제에 버금갈 정도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총동원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중앙은행이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가져야 한다는 도그마도 여지없이 무너졌다고 진단하고 있다. 종교와 정치는 분리돼야 한다는 신정분리의 대원칙이 무너진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게 일부 금융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심지어 인류의 역사가 예수탄생 이전(BC:Before Christ)과 이후(AD:Anno Domini,라틴어로 '그리스도의 해'라는 뜻) 나뉜 것처럼 앞으로 우리의 역사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전망까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짠돌이 독일이 GDP의 30%에 이르는 '울트라 슈퍼 경기부양책'을 발표한 배경도 살펴야 한다. 미국은 연방준비제도(Fed)를 동원해 사실상 무제한적인 통화증발을 선언했다. 유로존의 중앙은행인 ECB도 정크본드를 매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중앙은행이 재정정책까지 담당하겠다는 의미다. 재정적자가 이미 250%에 이르는 일본도 전시체제에 준하는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선진국 모두가 사실상 전시동원체제를 가동했다는 의미다. 곳간을 지키겠다는 기재부의 결기가 지난해 국채과 사무관 출신이 일으킨 적자국채 소동과 닮은꼴은 아닌지에 대한 성찰도 필요해 보인다. (국제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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