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종화 기자 = 한국은행이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매입하기 위한 특수목적법인(SPV) 설립 과정에서 산업은행을 통한 간접 대출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신중함이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은은 발권력을 사용하는 와중에 국민의 세금에 손실을 끼칠 가능성을 최소화하겠다는 기본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SPV의 출범까지 진통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28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한은은 최근 회사채와 CP를 매입하는 SPV 설립 방안과 관련해 정부와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은 산업은행을 통해 SPV에 간접적으로 대출한 뒤 SPV가 회사채와 CP를 매입하는 방안을 선호하지만, 기획재정부는 한은이 SPV에 바로 대출하기를 원하는 형국이다.

한은은 회사채 매입까지 3단계, 기재부는 2단계를 요구하는 셈이다.

SPV 설립 자체가 간접적인 회사채 매입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한은이 몸을 사리는 이유는 정부 보증의 범위가 불명확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당국이 참조한 미국의 사례 등을 보면 SPV에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일정한 비율로 나눠서 자금을 지원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10%의 자금을 지원하면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나머지 90%를 내는 방식이다. 다만 이 비율을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것은 아니다.

SPV가 회사채를 매입할 때 회사채의 위험성에 따라 한은이 지원하는 비율이 낮아질 수도, 높아질 수도 있다. 회사채의 신용등급이 낮아 위험이 큰 경우는 정부 자금의 비율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정부가 100%의 보증을 하지 않는 한 한은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반면 이미 SPV를 설립하기로 한 마당에 한은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은이 기업을 지원하면서 기업을 조사·확인하는 까다로운 작업을 피하려 한다는 비판이다.

한은법 80조 4항에 따르면 한은이 영리기업에 여신을 하는 경우 한은법 65조 3항과 4항을 준용하게 돼 있다.

65조 3항은 여신과 관련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한은이 대상 기관의 업무와 재산 상황을 조사·확인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한은법상 한은이 기업에 여신을 하면서 미상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조사를 할 수 있는데도 산업은행을 거치는 구조를 만들어 산은이 이 역할을 대신하도록 한다는 얘기다.

차현진 한은 인재개발원 교수는 최근 저서 '법으로 본 한국은행'에서 "한은이 영리기업을 지원할 때는 당해 기업의 업무와 재산상황을 면밀히 조사·확인해야 한다"며 "그러나 전대(간접 대출) 방식을 취할 경우 해당 영리기업을 조사 확인하는 법률적 책임이 전대자금을 받은 상업은행에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SPV를 만드는 것 자체가 회사채를 간접 매입하기 위한 수단인데 산은을 통해서 SPV를 다시 지원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도 다소 의문스럽다.

애초에 산은에 자금을 지원할 생각이었다면 한은법 80조에 대한 해석을 다툴 필요 없이 64조에 따른 지원이 가능하다는 문제 제기다.

한은법 64조는 한은이 금융기관의 어음을 재할인하거나 정부채·통안채 등을 담보로 금융기관에 1년 이내 기한부 대출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한은이 과거의 관행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은은 과거 경제 위기 시마다 국책은행이나 금융 공기업에 대한 간접 대출을 통해 경제를 지원하는 방법을 택했다.

차현진 교수는 "간접 대출 방식으로 영리 기업에 대한 여신을 수행하면 80조의 까다로운 의결 요건은 사문화된다"며 "또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의 책임이 가벼워 지면서 사후관리를 소홀히 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SPV 조성에 관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은은 전일 "제5차 비상경제회의를 통해 발표한 '저신용등급 포함 회사채ㆍCP 매입 기구'의 세부방안과 가동 시기에 대해서는 관계기관간 논의 중이며 확정된 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jhhan@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2시간 더 빠른 14시 57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