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손지현 기자 = 해외에 진출한 국내 시중은행의 현지법인과 지점들이 현지 금융당국의 요청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원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는 것을 대비해 현지에서 사회적인 기업으로 거듭나 영업 기반을 공고히 하겠다는 포석도 깔려있다.

반면 국내에 있는 외국계은행들은 잠잠하다. 정부가 민생·금융안정 프로그램에 이어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살리기에 동참해달라며 은행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지만, 국내은행만 참여할 뿐 외국계은행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 美·中 현지 금융당국 "원리금 상환 유예·만기 연장"

7일 금융권에 따르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차주의 전 여신을 대상으로 원금과 이자 납입을 최소 3개월간 유예하고, 신용카드나 ATM 이용 수수료를 면제할 것을 은행에 요청했다.

중국은 인민은행과 은보감국 중심으로 차주의 전 여신에 대한 분할상환 납입을 유예하고 만기일을 연장토록 했다.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는 6월 말까지 혜택이 유지된다. 개인 차주의 주택담보대출도 최장 6개월까지 만기 연장 대상에 포함됐다.

일본 금융청은 최장 12개월까지 코로나19 피해 차주의 원금 상환을 유예하고 만기를 연장토록 은행에 요청했다.

베트남 중앙은행은 코로나19 피해가 예상되는 거래업체에 대한 은행의 지원방안을 수립에 매월 보고토록 지난 3월 시행규칙을 변경했다. 원리금 납입 유예나 금리 감면, 은행의 자산건전성 유지에 대한 계획을 상세히 담도록 했다.

미얀마 금융당국은 이달들어 보름간 은행의 전체 여신에 대해 회수를 금지하고 예금 수취나 상품 가입을 위한 단체 신규상담도 제한했다. 캄보디아 중앙은행은 취약 업종 차주의 연체를 방지하고자 관련 여신규정을 개정토록 했다. 은행별로 취약업종을 지정하고 해당 차주의 선정 기준을 세분화해 보고토록 했다.

필리핀 중앙은행도 지난 한 달간의 자가격리 기간 동안 원리금 납입을 유예하고 해당 기간이 연장될 경우 같은 조치를 취하도록 은행에 지시했다. 인도 중앙은행은 지난 3월부터 이달까지 모든 차주의 여신 상환을 유예했고, 인도네시아도 최장 1년까지 100만달러 이하의 대출을 재조정하도록 했다.

◇ "구속력 없지만…" 현지법인 대책마련 골몰

이러한 현지 금융당국의 요청은 통상 구속력이 없다. 하지만 현지에 진출한 은행 대부분이 지침 내 금융지원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이 잠잠해진 국내와 달리 해외의 심각성이 더해지면서 국내 은행들은 본점 차원의 현지법인 지원책을 마련하느라 더 분주한 모습이다.

신한은행은 일본과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 미국, 캐나다, 필리핀 등 11개국의 현지 금융당국에서 요청한 차주의 만기 연장과 원리금 상환유예, 금리 인하 등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손익의 34%를 차지하는 신한베트남은행은 베트남 정부에 2억5천만원을 기부하는 등 현지 정부 차원의 코로나19 극복 캠페인에 동참했다. 현지 기업을 대상으로 한 대출 영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만큼 론 리뷰를 기반으로 한 추가 금리 인하도 선제로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나은행도 글로벌 핵심 자회사인 중국유한공사를 통해 적극적인 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음식료업, 숙박업, 소매 유통업 등 중소기업에 대한 신규대출을 확대하는 게 핵심이다. 또 대출 취급 절차도 간소화해 현지 기업의 금융 접근성을 강화했다.

시중은행 중 해외 네트워크가 가장 많은 우리은행도 10여개 국가의 요청에 따라 여신 지원책을 시행하고 있다. 개별 여신에 대한 점검을 통해 법인의 자산 건전성 관리도 신경쓰고 있다.

국민은행도 중국과 미얀마, 캄보디아, 뉴질랜드 등 4개국을 대상으로 개인과 기업 고객에게 최대 6개월간 원리금 상환을 유예하고 있다. 캄보디아와 미얀마는 국민은행의 글로벌 사업에서 가장 먼저 손꼽히는 전략적 요충지다.

한 시중은행 글로벌 담당 임원은 "해외 법인이 현지에선 외국계은행인 만큼 당국의 요청에 속박되진 않지만, 암묵적으로 알아서 따르는 추세"라며 "우리나라가 K방역 등 코로나19 사태에 잘 대응하고 있는 게 알려지면서 현지에서도 역할을 해 주길 기대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 동남아시아 등 국내 은행의 전략적 요충지일 경우에는 지원 대책에 대한 고민이 더 크다"며 "어려운 시기에 선제적인 행동이 나중에 더 큰 기회가 될 수 있어 본점 차원의 추가 지원책을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SC제일은행과 씨티은행도 고민이 크다. 당국 차원의 이자율 감면과 원리금 상환 유예는 하고 있지만 본점 차원의 여신지원책을 기대하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일부에서는 외국계은행이 코로나19 사태 지원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매년 고배당과 국부 유출 논란에 휩싸였던 만큼 어려운 시기에 적극적인 지원책으로 한국 시장에 대한 의지를 보여달라는 얘기다.

금감원 관계자는 "국내은행은 자율적으로 협조를 요청했고 은행이 응하고 있지만, 외국계은행에 별도의 지원을 강요할 순 없다"며 "외국계은행도 본점 차원의 전략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다. 시중은행 차원의 지원은 하고 있지만, 그 이상은 은행이 자체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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