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시중은행들이 작년부터 발행하기 시작한 특이한 채권이 하나 있다. 이름도 생소한 '커버드본드(이중상환청구권부 채권)'다.

관련법은 2014년 제정됐지만, 은행이 원화 커버드본드를 발행한 것은 작년이 처음이다. KB국민은행이 작년 5월 5천억 원을 발행하면서 첫 스타트를 끊었고, SC제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이 뒤를 이었다.

올해 들어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시장이 출렁거려 잠시 발행이 주춤했다가 우리은행이 지난 12일 다시 2천억 원을 발행했다. 역사로 보나 규모로 보나 커버드본드는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한 신생 시장이다.

그런데 커버드본드 시장이 첫 출발부터 애초 도입 취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커버드본드법인 '이중상환청구권부 채권 발행에 관한 법률' 1조는 커버드본드의 도입 목적이 가계부채의 구조 개선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에서 장기 고정금리 대출의 비중을 늘려 가계부채 구조를 안정시키고, 장기 현금 흐름을 떠안아야 하는 은행의 위험을 커버드본드로 상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법 제정의 목적이었다. 반면 현재 국내 은행들이 발행하고 있는 커버드본드는 만기가 5~7년이라 커버드본드와 주담대의 현금 흐름이 불일치할 위험이 크다.

또 커버드본드의 신용 등급은 'AAA'로 일반 은행채와 같고, 두 채권의 금리 차이도 미미하다. 커버드본드는 발행 과정이 복잡해 오히려 비용만 더 들어간다.

그런데도 은행이 은행채가 아닌 커버드본드를 발행하는 이유는 정부가 5년 이상 커버드본드의 잔액을 예수금의 1%까지 인정해 주기로 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예수금으로 인정받으면 예수금 대비 대출 비율을 100% 이내로 관리해야 하는 예대율 규제를 만족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국이 올해 코로나19 충격을 고려해 예대율 규제를 일시적으로 완화하자 일부 은행은 커버드본드 발행 계획을 곧바로 철회하기도 했다. 커버드본드 형태가 처음 도입 취지에도 맞지 않고, 발행 유인이 사라지면 시장이 고사할 위험까지 있는 셈이다.

대안으로는 덴마크식 커버드본드가 있다. 일명 '주택저당채권(MBS)형' 커버드본드로, 콜 옵션부 MBS처럼 1~20년의 다양한 만기로 발행해 장기 고정금리 주담대로부터 발생하는 현금흐름에 커버드본드를 1대1로 대응시키는 구조다.

가계부채를 안정시키기 위해 도입한 커버드본드가 은행의 예수금 확보 수단으로 쓰여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당국과 시중은행은 이제라도 커버드본드 시장을 제대로 된 방향으로 돌려놓기 위해 나서야 할 것이다. (금융시장부 한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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