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윤영숙 기자 = 3월 16일 월요일(이하 미국 동부시간), 미국 금융시장은 그야말로 일대 혼란이었다.

전날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비상 긴급회의를 통해 금리를 제로로 내리고, 7천억달러어치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발표하면서 시장이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상황은 완전히 반대로 흘렀다.

2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스테이트 스트리트의 로널드 오'핸리 최고경영자(CEO)는 3월 16일 오전 8시 정각 보스턴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급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부대표의 전화로 연금 매니저들과 기업 자금담당자들이 코로나19가 가져올 경제적 충격을 우려해 특정 머니마켓펀드(MMF)에서 수십억달러를 인출하길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때문에 해당 펀드가 보유한 채권의 일부를 강제 매각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매수자를 거의 찾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모두가 현금 확보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였다.

오'핸리 CEO는 회사의 자산관리 담당 부대표와 전날 연준의 비상 회의 결과가 시장에 미칠 영향을 점검했지만, 이러한 결과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하루 만에 13% 가까이 폭락했다. 하루 낙폭으로는 역대 두 번째로 컸다. 주식시장의 변동성은 역대 최대로 치솟았고, 투자자들은 국채와 같은 안전자산으로 몰려들었다. 기업들은 앞다퉈 현금 확보에 나섰지만, 대출은 전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오'핸리는 "시장은 최악을 우려하고 있었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씨티그룹의 애덤 롤로스 단기 크레디트 담당 헤드는 "2008년 금융위기가 느린 속도로 진행된 '자동차 충돌사고(car crash)'였다면, 이날은 그냥 '쾅(boom)'이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순식간에 단번에 일어난 충격이었다는 의미다.

오'핸리는 34년간 금융시장에 몸담으면서 많은 시장의 충격을 보았지만, 이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그 주 수요일로 끝난 한 주간 대형 기관투자자들이 소유한 프라임 MMF에서만 600억달러가 빠져나갔다. 해당 MMF는 대부분 단기 회사채를 보유한 상품이었다. 이는 주간 유출액으로는 역대 최대였다. 해당 기간 채권형 펀드에서도 560억달러어치가 순유출됐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자료에 따르면 단기 회사채 금리와 연방기금금리(FFR) 간의 스프레드는 3월 25일 2.43%포인트까지 확대돼 2008년 10월 이후 최대를 찍었다.







<프라임 MMF와 채권형 펀드에서 최대 자금 유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시작을 이틀 앞두고 일요일 오후 5시에 공격적으로 금리를 제로로 단번에 내린 것을 금융시장은 공포로 받아들였다.

그만큼 금융 시장의 상황이 심상찮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시장이 모르는 위험이 어디선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우려를 부추겼다. 연준의 대규모 프로그램은 시스템이 붕괴하는 것을 조기 차단한 조치였지만, 그만큼 상황이 시급했음을 시사한다.

파월 의장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바이러스 상황이 연준 이상의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고 진단했으며, 지난 한 주간 주요 금융시장에 스트레스 신호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파월은 구체적으로 채권시장의 "유동성 부족이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며 "채권시장의 스트레스는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말 한마디에 금융시장은 최악을 대비한 것이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 일일 등락률>



많은 기업과 연금 투자자들은 MMF를 현금과 같은 자산으로 생각해왔다. 단기 회사채와 지방 채권에 투자한 MMF는 은행의 당좌예금처럼 기능해 '현금성 자산'으로 분류돼왔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자금을 빼면 운용사들은 환매 요청에 응하기 위해 채권을 매각해야 한다. 단기간에 채권 매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채권가격이 폭락, 시장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결국 단기 채권 금리는 폭등세를 보였다.

스테이트 스트리트의 경쟁사 몇몇이 그들의 펀드를 떠받쳐야 할 것이라는 루머가 돌았으며 며칠 뒤 골드만삭스와 뉴욕멜론은행이 그들의 MMF가 보유한 자산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PGIM의 채권 부서도 우량의 단기 채권을 매각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이를 매수할 투자자도 이를 중개할 은행도 찾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PGIM의 마이클 콜린스 픽스드인컴 담당 매니저는 "브로커-딜러 커뮤니티가 마비됐다"라며 "금융위기 때 만큼이나 나빴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투자회사 캐피털 그룹의 비크람 라오 부채 거래 데스크 헤드는 16일 새벽 4시 30분에 사무실로 내려가면서 채권시장이 이미 혼란에 휩싸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월가 대형은행들의 선임 경영진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왜 거래에 나서지 않느냐는 질문에 은행 경영진들은 금융위기로 인한 규제 강화로 채권이나 다른 자산을 살 여유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금융 시스템을 건전하게 만들겠다고 도입한 자본 규제가 유동성을 말라버리게 한 셈이다.

당시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폭등하고, 모기지 채권 가격이 폭락하면서 많은 투자 펀드들이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에 시달렸다. 문제는 은행들에 담보로 맡기는 담보물은 은행의 장부에 자산으로 잡혀 자산은 더욱 늘어난 상황이었다.

모기지 채권 가격 하락을 떠받치기 위해 연준이 2천억달러어치의 모기지담보 증권을 매입하기로 했으나 이는 하루 만에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 났다.

핌코의 댄 이바신 매니저는 "첫날 연준은 시장에 완전히 치였다"라며 "리츠와 다른 레버리지 모기지 상품이 심각한 문제에 놓이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17일 화요일 UBS는 모기지 부동산 투자신탁과 연계된 두 개의 상장지수증권(ETN)을 폐쇄했다. 그 주 금요일 헤지펀드 안젤로 고든앤코가 운용하는 모기지 신탁은 거래 은행들에 미래의 마진콜에 응할 수 없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공포에 질린 투자자들은 채권을 헐값에 매각했고, 증권 인수업자들은 수십억달러어치의 거래를 취소했다. 신규 차입은 일제히 중단됐다.

리피니티브 자료에 따르면 3월 16일로 끝난 주간의 채권 발행액은 2008년 금융위기 때 모든 주간이나 2001년 테러리스트 공격이 있었던 주간, 혹은 1987년 블랙먼데이 주간 때보다 적었다.

MMF가 매입한 지방 채권도 매각에 시달리면서 지방 채권 시장의 2대 주관사인 씨티그룹은 그 주에 단 한건의 채권도 발행하지 못했다.

씨티의 지방 채권 담당 패트릭 브렛 헤드는 "살아있는 누구도 이보다 더 난폭했던 상황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소회했다.

채권시장의 유동성 패닉은 주식시장에 타격을 줬다.

주가지수선물이 하한가인 5%까지 떨어졌고, 투자자들은 앞다퉈 포지션을 청산했다. 변동성이 줄어들 것에 베팅해온 투자자들은 그야말로 패닉을 맞았다.

변동성지수는 82.69로 역대 최고치로 마감했고,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지만 혼란을 막지는 못했다.

17일에 당장 뉴욕의 한 헤지펀드인 말라카이트 캐피털 매니지먼트는 '극도의 시장 변동성'을 이유로 펀드를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JD캐피털 매니지먼트의 템포 변동성 펀드는 3월 한 달에만 75%이상의 손실을 냈다.

알리안츠 글로벌 인베스터스는 25일에 투자자들에게 회사의 구조화 알파 헤지펀드를 청산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회사 펀드 중 하나는 연초 이후 97%의 손실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ysy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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