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송하린 기자 = 미래에셋그룹이 자회사 일감 몰아주기를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철퇴를 맞자 행우회(行友會)를 앞세워 인력업체 등을 출자해온 은행권의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당국의 제재가 수십억원의 과징금은 물론 자칫 신사업이 중단할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는 만큼 최근 들어 행우회 출자회사를 매각하거나 청산하는 은행도 늘어나는 추세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 행우회 출자업체인 서원기업은 현재 청산절차를 진행 중이다.

행우회가 100% 출자해 운영해온 이 업체는 지난달 15일까지 은행 내 커피숍과 화폐박물관 뮤지엄샵 판매용역 사업을 도맡아왔다.

지난해 당기순손실은 2억원이지만 이 적자가 직접적인 청산의 배경이 된 건 아니다. 서원기업은 2018년 진행된 감사원 감사에서 한은 관련 사업을 수의계약으로 진행해 지적을 받았다. 이는 국책은행 행우회를 향한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경고다.

그동안 국회에서는 은행의 퇴직 임직원을 중심으로 꾸려진 행우회가 출자한 회사에 은행이 수의계약 형식으로 일감을 몰아주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경쟁입찰을 거치지 않아 영세한 중소업체의 영업기반을 위협하고 다수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비난이 거셌다.

산업은행 행우회가 출자한 용역업체 두레비즈가 지난해 청산한 것도 같은 이유다. 두레비즈는 2017년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최근 10여년간 수의계약을 통해 맺은 계약 규모만 900억원을 웃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산업은행은 지난해 KDB비즈라는 자회사를 신설해 두레비즈 소속 용역직원 대부분을 편입했다. 또 두레비즈 시절 그간 행우회에 해 오던 배당도 중단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 자회사에 대해선 불필요한 배당을 지양하라는 고용노동부의 지침을 따른 조치다.

KB국민은행은 일찌감치 행우회 출자회사인 NS한마음의 지분을 매각했다. 2005년 행우회가 1억원을 출자해 설립한 이 자회사는 이듬해 지분을 정리해 지난 2015년에는 폐업 절차를 밟았다.

하지만 행우회 출자회사를 통해 각종 용역 서비스를 제공 중인 은행들도 많다.

우리P&S는 우리은행 행우회가 지분 100%를 출자한 업체로 행우회 출자업체 중 자본금 규모가 가장 크다. 각종 사업시설 관리부터 인쇄업, 제조업, 건설업은 물론 임대업과 부동산개발업까지 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P&S의 당기순이익은 100억원을 웃돈다. 이중 배당금으로 행우회에 지급한 금액만 40억원이다.

하나은행 행우회(95.1%)와 하나금융투자(4.9%)가 출자한 두레시닝은 수차례 증자를 통해 자본금이 14억원까지 커졌다. 쇼핑몰과 물류, 부동산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며 지난해에만 9억2천만원 넘는 수익을 내고 이중 절반에 달하는 4억2천만원을 배당했다.

하나은행 행우회는 옛 외환은행 행우회가 출자해 설립한 외향산업도 100% 출자업체로 보유 중이다. 하나은행과 하나카드 콜센터 상담원 관리를 도맡고 있는 이 업체도 매년 10억원 안팎의 당기순이익 중 절반을 행우회에 배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금액은 공개를 거부했다.

IBK기업은행 행우회가 100% 출자한 KDR한국기업서비스도 각종 도·소매업과 인력 파견업, 용역경비업, 부동산 임대업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억2천만원으로 이중 절반인 6천만원을 행우회에 배당으로 지급했다.

신한은행 행우회가 100% 출자해 콜센터 등 각종 사업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신한서브도 지난해 당기순이익 12억원 중 2억3천만원을 배당금으로 지출했다.

지방은행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부산은행의 경우 행우회가 별도의 출자업체를 운영하지 않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은행이 성장하는 만큼 지역 기업과 함께 커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경영진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반면 부산은행과 함께 지방은행의 양대 축으로 분류되는 대구은행은 행우회가 출자한 자회사 대경TMS를 운영 중이다. 각종 사무지원과 콜센터를 운영하며 지난해에만 2억7천만원의 수익을 냈다. 자본금 규모도 12억원으로 지방은행 중 가장 크다.

그밖에 경남은행 행우회는 경은시스템, 광주은행과 전북은행은 각각 광은비즈니스와 전은산업을 행우회 100% 출자업체로 두고 있다. 다만 이들 규모는 다른 시중은행이나 지방은행보다 영세했다.

일감 몰아주기를 지양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행우회 출자업체를 없애는 분위기가 짙어지자 이들 은행의 근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미 업계 추세를 고려해 지분 정리를 타진하는 곳들도 늘고 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행우회 출자업체 매각은 중장기적인 고민거리"라며 "수의계약으로 해오던 관행을 공개입찰로 돌려 운영하고 있고 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용역률을 관리 중이지만 제 식구 감싸기 등을 향한 정서법을 무시할 수 없다. 자칫 또 다른 미래에셋 사례가 될까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퇴직 임직원이 몸담은 행우회 기반의 조직을 손대는 게 은행에 쉬운 일은 아니다. '알짜배기'로 소문난 행우회 출자업체 대표자리는 퇴직을 앞둔 은행 임원들 사이에서 일순위 재취업 자리기도 하다.

은행의 인사 담당 실무자는 "행우회 자회사는 청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며 "조직의 성격 자체가 민감해 지분 정리를 위해선 경영진 차원의 결단이 필요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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