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법무부가 기업 지배구조의 개선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을 11일 입법 예고하면서 주요 기업의 지분을 다수 확보한 대형 연기금들의 영향력이 더욱 막강해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10일 법무부는 ▲다중대표소송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임 ▲감사 선임시 주주총회 결의요건 완화 ▲배당기준일 규정 개선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은 다중대표소송제다.

현행법은 발행 주식 총수의 1%(상장사의 경우 6개월 전부터 0.01%) 이상을 보유한 주주는 회사의 이사를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종속회사 이사의 행위로 종속사에 손해가 발생하면 지배회사의 주주가 해당 이사에게 책임을 추궁할 법적 수단이 없다.

다중대표소송은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해 지배주주나 경영진의 사익 추구에 대한 사후적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진다.

다중대표소송이 도입되면 모회사 주주는 자회사 이사가 회사에 손해를 끼쳤을 경우 자회사 지분이 없더라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주주가 자신이 투자한 회사에 대해서만 손해배상 소송을 낼 수 있었는데 다중대표소송으로 소송 대상이 훨씬 커지는 것이다. 소송 제기 지분율은 현행법과 같다.

법무부는 "자회사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나 대주주의 사익추구 행위 방지 등 모회사 소수 주주의 경영감독권을 제고하는 효과가 기대된다"며 "다중대표소송은 모회사가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는 경우를 위한 보충 수단일 뿐 자회사 경영 개입수단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제든 종속회사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여건이 마련된 만큼 기업들은 주요 상장사의 지분을 대거 쥐고 있는 연기금의 눈치를 더욱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공시에 따르면 지난 2018년 말 기준 지분이 0.1% 이상인 종목은 742개다. 전체 보유종목 779개 중 거의 대다수 기업은 지분이 0.1% 이상인 것이다. 지분이 1% 이상인 기업 또한 591곳으로 전체의 75%가 넘는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주요 기업은 거의 모두 국민연금의 다중대표소송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주요 연기금 중 사학연금과 공무원연금은 국내 주식 투자 종목별로 세부 내역을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 두 기관은 내부적으로 특정 종목에 대해 1%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지는 않는다는 방침이다.

공무원연금 관계자는 "특정 기업에 대해 보유 지분율 1% 미만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학연금 관계자도 현재 1% 이상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는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주요 연기금은 결국 국민연금을 벤치마크하는 경향이 있다"며 "국민연금의 기조에 따라 다른 대형 연금들도 보조를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다중대표소송 제도를 둘러싼 관건은 지배회사와 종속회사의 기준이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있다고 법조계는 보고 있다.

법무법인 세종이 지난 5월 말 발간한 상법 개정안 관련 노트에서 "다중대표소송 제도의 핵심 쟁점은 법이 적용되는 지배회사와 종속회사의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일 것"이라며 "개정안마다 다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은 "지배회사의 주주가 종속회사의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종속회사의 법인격을 부인하는 결과가 되므로 종속회사의 법인격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에선 다중대표소송의 적용기준을 완전 모자회사 등으로 좁게 설정하고 있다"며 "다중대표소송의 실효성을 중시하는 입장에선 30% 초과 지분 보유 등으로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현재 법무부는 상법상의 모자회사 관계(지분율 50% 초과)일 때 다중대표소송을 적용하는 게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연기금 관계자는 "법무부 외에 국회에서도 상법 개정안의 입법을 준비하는 것으로 안다"며 "최종 입법이 되고 지배-종속 회사 간 기준이 정해지면 그때 대응 방안을 추가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jh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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