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HDC현대산업개발과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을 두고 치열한 기싸움에 들어간 가운데, 지난해 본계약 체결 이후 늘어난 부채 4조5천억원에 대한 책임 소재가 양측간 재협상 성패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재협상 가능성은 커졌지만 HDC현산의 진정성에 여전히 의심을 하고 있는 산은이 계약종결 시점 및 차입금 상환 만기 연장을 제외한 다른 요구를 받아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시장에서는 양측이 향후 수개월 간 누가 빚 부담을 더 지느냐를 놓고 공회전만 거듭하다 결국 계약 파기 수순에 이를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재협상을 요구했던 HDC현산은 "인수 확정 조건에 관한 협상 테이블에 직접 나와 적극적으로 임하라"는 산은의 입장에 답변하지 않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12일 "아직까지 HDC현산으로부터 채권단의 요구를 받아들일지 여부에 대한 답이 없는 상태"라며 "직접 협상테이블에 나와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하겠다고 한다면 뜸을 들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큰 만큼 하루빨리 재협상에 돌입해 불확실성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빠르면 이달 말께 양측이 비공개 재협상을 시작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선 오는 27일이던 아시아나항공 거래 종결 시점은 6개월 뒤인 12월 27일로 연장하는 건 무리가 없어 보인다.

채권단이 HDC현산의 재협상 요청을 받아들인 것은 사실상 계약 종료일을 연장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문제는 인수 계약 이후 예상치 못하게 늘어난 부채 4조5천억원의 처리 방법이다.

HDC현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아시아나항공의 부채가 올해 들어 4조5천억원 이상 늘어나는 등 재무 상태가 크게 나빠진 만큼 계약 체결 당시 조건으로 인수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산은과 수출입은행이 자신들과의 사전 협의 없이 1조7천억원을 추가로 빌려주기로 하면서 채권단도 아시아나항공의 빚이 늘어난 데 일조한 만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채권단은 지난해 1조6천억원에 이어 올해 1조7천억원까지 아시아나항공에 총 3조4천억원을 빌려줬는데, HDC현산은 이 자금 상환 기간을 늦추고 금리도 파격적으로 깎아달라고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또 이달말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하는 영구 전환사채(CB)를 인수하는 형식으로 투입되는 5천억원의 출자전환 문제도 거론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구채는 회계상 자본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완전자본잠식 수준에 거의 도달한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을 끌어내릴 수 있다.

다만, 출자전환하면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30%가량을 보유하게 돼 2대주주에 오르게 되므로 HDC현산 측에서 달갑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HDC현산 측에서 출자전환하되 의결권 행사를 제안하는 등의 조건을 내걸 수 있다.

하지만 산은 입장에서는 출자전환이 공적자금 투입과 마찬가지여서 부담을 떠안는 데 주저할 수 있다.

HDC현산이 약속한 2조1천771억원어치 유상증자 시기와 단가 역시 양측 입장차가 뚜렷하다.

인수계약에서 구주와 신주 인수가격을 1주당 각각 4천700원과 5천원으로 산정했는데, 계약 이후 아시아나항공 주가는 현재 4천200원 수준이다.

HDC현산이 발행 가액을 낮춰줄 것과 증자 시점을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정리된 이후로 미뤄달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지만, 산은 입장에서는 매각조건이 바뀔 경우 대기업 특혜 논란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수용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산은이 막대한 부담을 지고서 HDC현산과의 협상에 저자세로 임할 이유가 없다고 보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전일 매각 협상이 진행 중인 아시아나항공에는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이 어렵다는 뜻을 밝혔지만, 계약이 무산된 이후라면 가능하다.

산은이 딜이 깨질 것을 대비해 마련한 컨틴전시 플랜에 따라 아시아나항공을 기안기금으로 넘길 경우 산은은 회계 부담을 전혀 지지 않아도 된다.

IB업계 관계자는 "양측 모두 재협상을 통해 가격을 조정해 딜을 마무리 지으려는 의지보다는 계약 무산에 대비해 책임을 덜기 위한 각종 안전장치를 마련하려는 데 관심이 더 많아 보인다"면서 "채권단 내부에서는 HDC현산의 조건을 맞춰주면서까지 딜을 성사시켜야 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어 재협상에서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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