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국은행이 국고채 단순매입을 고민하는 포인트는 여럿 있다. 일부 채권시장 참가자들은 발 빠른 집행을 주문하지만, 무작정 시장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성질의 일이 아니란 얘기다.

우선 시장이 그렇게 불안하지 않다. 한은의 추가 단순매입은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과 맞물려 있다. 추경 관련 국고채 물량이 대거 풀리거나 그런 우려가 작용해 시장이 불안정해지면 그때 나서겠다는 게 한은의 복안이다. 줄곧 이런 취지를 설명하기도 했다.

지난 4월10일 한은의 단순매입 시행 이후 장기물 금리는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10년물 국고채 금리는 직전 단순매입 시행일 수준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3년과 10년 스프레드도 크게 확대되는 추세는 아니다. 지난 3월과 4월의 시장 상황과 비교해보면 한은이 긴박하게 국고채 매입에 나서야 할 때라고 보기는 어렵다.

부채의 화폐화 문제도 고려돼야 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맞닥뜨린 문제이기도 하다. 연준은 지난 3월 말 회사채 금리가 치솟자 회사채를 직접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4월에는 회사채 매입 범위를 확대하겠다고도 했다. 이후 미 국채 금리는 급락세로 돌아섰다. 연준의 활약으로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은 측면이 있지만, 지금은 부채의 화폐화를 가져왔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연준이 미 정부의 재정적자를 보전하려고 동원됐다는 시각이다.

한은도 중앙은행의 독립성 훼손과 관련한 이런 비판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이주열 총재의 발언에서도 한은 내부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이 총재는 한은 창립 70주년 기념사에서 "중앙은행의 준재정적 역할에 대한 요구를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며, 그 정당성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시장개입 원칙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에 대해 우리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사회적 컨센서스를 도출해 내야 한다"고 언급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은의 국고채 매입이 양적완화로 인식될 수 있다는 부담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서 한은의 이런 시각을 엿볼 수 있다.(연합인포맥스가 17일 오전 10시10분 송고한 '韓銀 국채매입 침묵 이유 이거였나…의사록서 밝힌 속내' 기사 참조) 비전통적 통화정책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한 위원의 지적에 한은 관련 부서는 "양적완화와 같은 비전통적 정책수단의 활용에 앞서 기준금리의 실효하한 수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수 있다"며 "국채발행 규모, 장기금리 움직임, 자본유출입 및 금융불균형 영향 등 정책여건도 함께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한은이 시장 또는 금융회사의 이익을 위해 시장 개입에 나서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다. 한은이 단순매입 시기나 여부를 정하는 데 신중 또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시장 안정이라는 대원칙이 없는 단순매입은 자칫 시장의 모럴해저드(moral hazard)를 방조하거나 부추기는 꼴이 될 수 있다. 금리가 치솟으며 포지션에 손실이 날 때마다 한은의 개입을 바라고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우리나라 금융의 최종대부자로서 역할을 다해야 하지만, 발권력 행사는 위기 상황에 발휘돼야 한다. 비기축통화국의 중앙은행인 한은은 태생적으로 미 연준과 모든 행동을 같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금융위기 공포가 한바탕 몰아치고 다소나마 안정을 찾은 지금은 가능한 버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거나 손실을 줄이려고 단순매입 압박을 하는 극소수 플레이어들의 일방적 주장에 중앙은행이 모두 응답할 이유는 없다. (금융시장부장 한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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