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정부가 내놓은 6·17 부동산대책을 향한 여론의 뭇매가 거세지면서 금융당국도 해명에 진땀을 빼고 있다. 특히 전세자금 대출 규제를 두고 서민의 주거 사다리를 걷어찼다는 비난이 나오자 이번엔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상품까지 홍보하고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9일 보도자료를 통해 오는 하반기에 출시될 시중은행의 분할상환 전세대출을 소개했다.

KB국민은행을 시작으로 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이 출시할 이 상품은 전세계약 기간 동안 이자만 냈던 기존 방식과 달리 원금도 일부 갚을 수 있는 게 골자다.

분할상환을 하다 사정이 어려워져 상환을 중단해도 괜찮다. 연체를 우려해 원금 갚기를 두려워하는 예비 차주들을 배려한 조치다. 또 전세대출을 연장하더라도 기존 대출한도만큼 재대출도 가능하다.

금융위는 이 상품을 '비과세 고금리 적금'에 비유하며 이례적으로 홍보했다.

전세대출이 끝나고 집주인에게 돌려받은 전세금에서 대출잔액을 뺀 만큼 목돈도 생기고, 상환 금액만큼의 소득공제도 챙길 수 있어서다. 1년을 맡겨도 1%의 이자도 채 주지 않는 은행 예금에 가입하느니, 오히려 2~3%대의 전세대출을 상환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얘기다.

그동안 금융위는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조금씩 나눠 갚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노력해왔다. 전세대출에 이를 확대한 것은 그만큼 가계대출에서 전세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서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은 70조원을 넘어섰다. 이들의 연평균 증가율 역시 30%를 웃돈다.

담보대출과 집단대출, 그리고 전세대출로 구성된 주택 관련 대출에서 전세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20%가 넘는다.

전세대출이 급증한 것은 집값 상승으로 인한 무주택자의 주거 실수요가 바탕이지만, 정부는 그 아래 존재하는 '갭투자'를 겨냥했다.

6·17 부동산 대책에 포함된 전세대출 규제를 향한 논란이 거세지자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는 이튿날 보도해명자료를 내고 정면 반박에 나서기도 했다.

갭투자 확산에 따라 서울은 물론 수도권, 일부 지방의 주택가격이 상승세로 전환해 대책을 냈다는 게 골자다. 특히 서민과 중산층이 거주하는 서울의 노원·도봉·강북·금천·구로·관악구 소재 주요 24개 단지의 올해 거래 중 무주택자의 보증금 승계 비율이 43%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의 해명에도 이번 대책을 향한 비난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정부가 아무리 이번 대책이 부동산 가격상승의 핵심 원인인 갭투자에 있음을 강조하고, 갭투자를 억제해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면 실수요자가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앞당겨지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해도 마찬가지다.

이날 금융위가 홍보한 시중은행의 분할상환 전세대출 역시 서민에게는 주거 안정성과 함께 혜택을 볼 수 있는 보완대책으로 언급됐지만, 정작 상품을 준비하는 은행들의 반응조차 미지근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를 향한 비난을 끄는 데 시중은행이 소방수처럼 투입됐다"며 "상품이 출시되더라도 수요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다른 대출보다 안정적인 전세대출을 경쟁적으로 취급한 은행의 여신 정책도 가계대출을 늘리는 데 한 몫 거든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더는 전세대출을 늘리기 어려워진 환경에서 이 같은 상품을 출시하는 게 현실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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