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국민연금이 한진칼에 대해 지분 보유 목적을 기존대로 '경영참여'로 유지함에 따라 한진칼의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에서 또다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현재 상태로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국민연금은 한진칼의 지분을 3% 이하까지 꾸준히 줄여온 반면 한진칼 현 경영진과 대립각을 이루는 이른바 3자 연합은 지분율을 45%까지 끌어올리며 수적 우위를 점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국민연금이 현재 지분율을 유지한다면 '경영참여' 목적을 유지한 데 따른 뚜렷한 이점도 없어 그 배경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3일 제7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끝난 후 질의응답에서 한진칼에 대해 "주식 보유 목적을 바꿀 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어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했다"며 "의결된 사안은 특별한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지속해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22일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비공개회의를 열고 한진칼 주식의 보유 목적을 기존 '경영 참여'에서 '단순투자'나 '일반투자'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논의 끝에 국민연금은 기존 투자 목적을 유지하면서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셈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단순투자'는 의결권 등 지분율과 무관하게 보장되는 권리를 행사하는 투자자, '일반투자'는 경영권 영향 목적은 없으나 주주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경우다. 반면 '경영참여'는 경영권 영향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자로 분류된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한진칼의 경영에 영향력을 발휘할 만큼 지분이 많지는 않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한진칼의 지분율이 2.9%까지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8년 4월 11.58%에 달했던 한진칼의 지분율은 지난해 4월 4.11%까지 떨어졌고 5% 이상 룰에서 제외됐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은 한진칼에 대한 보유 지분 공시 의무에서 벗어났지만, 현재 지분율은 3% 아래까지 내려간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연금은 이 정도 지분으로 지난 3월 한진칼 정기 주주총회에서 현 경영진인 조원태 회장의 우군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이마저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과 맞서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 반도건설의 '3자 연합' 지분율이 45%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레이스홀딩스는 지난달 30일 한진칼의 지분 45.23%를 보유했다고 공시했다. 그레이스홀딩스는 KCGI 산하 투자목적회사다.

이번 3자 연합의 매집으로 한진칼 지분은 조 회장 측 우호 지분(델타항공·카카오·GS칼텍스·대한항공 자가보험 및 사우회 등) 41.30%와 격차를 더 벌렸다. 국민연금이 지난 3월처럼 조 회장의 손을 들어주더라도 3자 연합이 우세한 형국이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유의미한 캐스팅보트를 쥐려면 한진칼의 지분을 확대하는 방안이 있다"면서도 "조 회장 측을 지지하기 위해 한진칼 지분을 굳이 더 매집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한진칼의 지분율을 현재 수준으로 놔둘 예정이라면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로 유지한 데 따른 이점도 크지 않아 보인다.

지난 2월 금융위원회가 개정한 자본시장법 제154조(대량보유 등의 보고에 대한 특례)에 따르면 그간 '경영참여' 목적의 투자자만 할 수 있었던 ▲정관 변경 ▲배당 ▲회사 임원의 선임과 해임 ▲자본금 변동 등은 '일반투자' 목적의 투자자도 가능해졌다.

금융위는 ▲공적연기금 등의 사전에 공개한 원칙에 따른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관 변경 추진 ▲배당과 관련된 주주활동 ▲배당 회사 임원의 위법행위에 대한 상법상 권한(해임청구권 등) 행사 등은 일반투자 신고자도 가능하도록 변경했다.

다시 말해 국민연금이 한진칼의 지분 보유 목적을 '일반투자'로 바꿔도 이 같은 권리는 충분히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경영참여' 투자자는 '내부자의 단기매매차익반환의무'에 따라 최근 6개월간의 시세차익을 반환해야 하지만 '일반투자' 투자자는 이런 의무마저 없다. 충분한 지분율로 유의미하게 경영에 참여할 것이 아니라면 3% 이하의 지분으로 '경영참여'를 유지한 데 따른 이점은 부족해 보이는 것이다.

연기금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장기 투자를 지향하는 만큼 현재 지분율이 낮아졌다고 지분 보유 목적을 금세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상황에 따라 지분을 확대해 경영참여 강도를 높일 여력을 남겨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능후 장관은 지난해 5월 기금위 회의에서도 국민연금의 한진칼 지분율 하락에 대해 "위탁운용사들이 자체 판단한 일이기 때문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나 기금위가 관여할 수 없다"며 "특정 기업 주식에 대한 지분율 목표치를 미리 설정해두고 활동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jh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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