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 과실의 차 사고에 대한 보험처리 실무에서는, 편의상 자기차량손해보험(자차보험)으로 선처리하고, 이후 과실 비율이 확정되면 그에 따른 금액을 정산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하급심에서 자차보험사의 상대방 보험사에 대한 구상금 청구에 대해, 자기부담금 상당액은 피보험자에게 우선 지급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자기부담금을 공제한 나머지만을 인용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자기부담금 20%를 약정한 자차보험에 가입한 운전자가 상대방 과실 60%인 차 사고로 200만원 상당의 차량 손해를 입게 되는 경우를 예로 들면, 우선 자기부담금 40만원과 자차보험금 160만원으로 사고를 처리한 후 자차보험사가 상대방 보험사에 구상금을 청구하면 상대방의 책임 범위인 120만원(200만원의 60%)에서 위 자기부담금 40만원을 공제한 80만원만이 인용되는 것이다.

이는 피보험자의 상대 운전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자차보험사의 구상권에 우선한다는 입장인데, "피보험자는 보험자로부터 수령한 보험금으로 전보되지 않고 남은 손해에 관하여 제3자를 상대로 그의 배상책임을 이행할 것을 청구할 수 있는바, (중략) 위 남은 손해액이 제3자의 손해배상책임액보다 적을 경우에는 그 남은 손해액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에 제3자의 손해배상책임액과 위 남은 손해액의 차액 상당액은 보험자대위에 의하여 보험자가 제3자에게 이를 청구할 수 있다."고 판시한 대법원 2014다46211 전원합의체 판결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일부 자차보험 피보험자들의 자기부담금 환급 요구가 거세어지고 있다.

결국 최근 하급심의 판단은 자기부담금을 전원합의체 판결이 말하는 "보험금으로 전보되지 않고 남은 손해"로 해석한 결과로 보인다. 전원합의체 판결의 문언과 자차보험금 지급의 외형만을 놓고 보면 이러한 하급심의 판단과 그에 따른 피보험자들의 자기부담금 환급 요구를 일견 정당한 것으로 평가할 여지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자기부담금 약정이 없는 보험계약이 문제 되었던 위 전원합의체 사안과 자기부담금 약정이 포함된 자차보험의 사안을 동일하게 볼 수는 없고, 따라서 자기부담금 환급 문제에 대하여 전원합의체 판결 문언을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즉 자기부담금이 위 전원합의체 판결의 "남은 손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부담금 약정이 포함된 자차보험계약이 체결된 경우, 손해 일부를 자기부담금으로 전보하더라도 해당 자차보험이 피보험자의 손해 전체를 담보하는 것으로 보되, 그 대가로 보험료를 할인받기로 하는 합의가 성립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를 고려한다면 자기부담금을 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말하는 "남은 손해"로 보아 피보험자가 자기부담금을 환급받음으로써 종국적으로 어떠한 손해도 분담하지 않게 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자차보험금이 전체 손해액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보험자와의 관계에서는 자차보험에 의하여 전보되지 않고 남은 손해는 없다고 보는 것이 보험계약 당사자 의사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일 것이다.

특히 자기부담금 제도는 운전자가 사고 예방의 유인을 갖게 하고, 그 결과 보험료나 각종 비용이 절감되는 효과를 갖는데, 자기부담금 약정에 담긴 위와 같은 당사자 의사를 무시한 채 환급이 이루어지는 경우 이러한 긍정적 효과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점에도 유념해야 한다.

일부 운전자가 자기부담금을 부담하지 않는 편익을 누리는 대신에 전체 보험계약자가 자차보험료 상승이라는 부담을 떠안게 되는 것이다.

자기부담금 환급 논쟁이 격화되면서 소 제기도 잇따르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약관을 보다 명료하게 함으로써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여야 할 것이지만, 그에 앞서 법원에서도 자기부담금 약정의 취지를 고려하여 자차보험 제도의 지속가능성과 전체 보험계약자의 이익에 합치되는 판단이 내려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법무법인 충정 이한길 변호사)

(서울=연합인포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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