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조세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경비에 충당할 재화를 얻기 위해 반대급부 없이 국민으로부터 강제적으로 징수하는 재물이다. 이런 이유로 세금을 걷는 행위는 무엇보다 공평해야 한다. 조세원칙 중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 공평의 원칙인 것이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가 내놓은 2020년 세법 개정안 일부는 아쉬움이 남는다.

올해 세법 개정안은 소득세 최고세율을 올리고 주택보유에 대한 종합부동산세를 강화하는 등 고소득자와 다주택자를 겨냥했다. 반면, 코로나19 사태에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는 세제지원을 확대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일부 조항에서의 비과세감면 확대는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강조했던 조세원칙과 어긋난다. 이른바 '동학 개미의 승리'로 평가되는 주식 양도소득 기본공제금액 확대가 대표적인 경우다.

정부는 오는 2023년부터 국내 상장주식과 주식형펀드를 합쳐 5천만원 이하의 이익을 거둔 경우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세법 개정안을 통해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기본공제를 5천만원으로 상향했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는 지난 6월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상장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2천만원까지만 비과세를 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거래세금인 증권거래세의 단계적 인하조치도 함께 내놓았다.

몇주 만에 상황이 바뀌었다. 대통령이 금융 세제 개편이 주식시장을 위축시키거나 개인투자자의 의욕을 꺾는 방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직접 언급했기 때문이다. 물론 막대한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고, 시중 자금이 자본시장으로 흘러가도록 하려는 취지였을 것이란 점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정책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과 어긋나는 행보라는 점에서 아쉽다. 모든 소득에 공평과세를 한다는 점에서 금융투자소득 과세제도의 도입은 긍정적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도 조세원칙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자칫 금융투자소득 과세제도 도입의 긍정적인 취지도 흔들리는 탓이다.

얼마 전까지 수출이나 산업활동 등 실물경제와 비교할 때 증시가 과열이라고 지적을 했던 경제 관료들도 모양새가 빠지게 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수출이 고꾸라지고 국내총생산(GDP)이 역성장하고 있지만 사실 주식시장은 딴 모습이다. 이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GDP도 전기대비 마이너스(-) 3.3%, 전년동기대비 -2.9%를 기록했다.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최저치다. 그런데도 국내 주식시장이 나쁘지 않다. 막대한 유동성의 약발이다.

더욱이 주식 양도차익 기본공제액 5천만원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제시되지 않았고, 다른 소득과의 형평성에서도 문제가 적지 않다. 다른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은 물론 이자소득 등 다른 자본소득과 비교해도 과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국민들에게 성실한 납세를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세금이 늘어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세금을 걷지 않고서는 국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국민들이 누리는 각종 공공복지도 마찬가지다. 세금 없이는 국가부채는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을 계기로 다주택자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일부는 부동산대책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계획하는 등 조세저항 운동으로 번질 조짐이다. 이들이 주식 양도소득 기본공제액 확대를 이유로 조세 형평성을 문제 삼는다면 정부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득권이 조세 회피에 성공하거나 소득이 발생하는 곳에 국가가 제대로 과세하지 않으면 빈부격차는 커지고 사회는 더욱 양극화될 수밖에 없다. (정책금융부장 황병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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