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노현우 기자 = 정부가 확대 재정정책을 펴는 가운데 은행 예금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리카도 대등정리'의 현실화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자 가계 등 민간 주체가 미래 시점의 세금 부담을 우려해 저축을 늘렸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리카도 대등정리(Ricardian Equivalence)에 따르면 정부가 적자국채를 발행해 확대정책을 펴도 총수요에는 영향이 없다. 민간 부문은 적자국채 발행이 미래 세금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란 판단에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서다.

28일 채권시장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은행 수신은 1천858조원으로 작년 말 대비 108조7천억원 급증했다. 상반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 증가폭이다.

예금은 대출과 같이 급증하는 모습을 보였다. 올해 상반기 중 가계·기업 대출은 118조3천억원 늘었다.

가계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이 위기 상황에 대출을 늘렸지만 소비에 나서기보다 예금 형태로 지니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와 통화당국도 소비부진과 관련 경계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24일 2분기 경제성장률과 관련 "내수 반등에도 서비스 소비의 회복세는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소비가 줄어든 이면에 높아진 가계저축이 봉쇄조치 종료시 해소될 비자발적 저축인지, 미래의 불확실성에 따른 예비적 저축인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5일 물가설명회에서 "위기 상황에서 대규모 해고라든지 매출 급감을 경험할 경우 극단적 위험 회피 성향을 갖는 이른바 '슈퍼 세이버'가 증가할 수 있다"며 "성장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소비와 투자 회복이 더뎌지고, 이는 다시 물가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학계와 시장에서는 확대 재정정책이 총 수요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이론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계와 기업의 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는 정부가 지출을 늘려야 하는데, 정부의 지출 확대가 고스란히 민간 소비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가계가 미래 세금을 고려할 정도로 합리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례로 언급되는 것은 긴급재난지원금이다. 기한 내 쓰지 않으면 소멸하는 형태라 정부의 지출 확대가 저축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장기 영향은 미지수지만 단기적으로 수요를 확대한 셈이다.

증권사의 한 채권 운용역은 "미래 세금 부담은 고소득자들이 더 지는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며 "확대 재정정책 혜택을 받는 대상과 세금 부담하는 대상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소비진작 효과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오석태 소시에테제네랄(SG) 이코노미스트는 "정부의 확대재정정책이 5월 소매판매를 살리는 데 분명 도움을 줬다고 생각한다"며 "일부에서 긴급재난지원금 확대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코로나19에 타격을 입은 부문과 유망한 분야로 재정지출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hwro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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