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미국 스스로가 미국에 최악의 적이다. 우리가 가진 돈의 건전성에 대해 우려한다"

헤지펀드 업계 대부 레이 달리오가 '달러의 위기'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의 물리적 충돌 가능성, 자본전쟁 가능성 등은 달러 약세의 한가지 이유일 뿐, 좀 더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 자체에 있다고 봤다.

지난 주말 달러에 대해 우려하고 있느냐는 폭스 뉴스 진행자의 질문에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달리오 회장은 "생산성을 확대하기보다 적자를 계속해서 운영하고, 채권을 팔거나 돈을 찍어낼 수는 없으며, 일정 기간 이런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건전한 것을 하기 위해, 생산적이 되기 위해, 우리가 쓰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통화 안정성을 쌓기 위해, 좋은 대차대조표를 구축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는 쇠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달리오가 말했듯, 대규모 재정 적자, 그에 따른 국채 발행과 돈 찍어내기에 나서면 달러는 흔해지고, 가치는 떨어지는 게 이론적으로는 맞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3월 이후 팬데믹으로 촉발된 경기 침체에 대처하기 위해 전례 없이 달러를 찍어냈다. 연준의 대차대조표는 다른 중앙은행들보다 훨씬 빠르게 늘어났다. 그런데도 달러는 '왕'의 위치를 지키며 오히려 입지를 더 탄탄하게 굳혔다.

달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 중 하나라는 존재감을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더 과시했다.

지난 3월이 이를 보여주는 가장 단적인 예다. 코로나19로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유동성이 마르는 조짐이 나타나자 모든 이가 다 달러로 몰려들었다. 금, 미 국채 등을 모두 제치고 사람들은 달러를 현금으로 들고 가길 원했다. 달러난은 극도로 심해졌다.

앞서 미·중 관계 악화 속에서도 싸움의 당사자 답지 않게 달러는 올랐다. 리스크 오프면 달러가 당연히 오르고, 리스크 온 이어도 이유를 찾아 올랐다.

이런 '달러 킹'의 입지는 최근 흔들리고 있다. 달러 인덱스는 2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리스크 오프든, 온 이든 다른 경쟁 통화에 밀리는 게 최근 뚜렷한 흐름이다.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94선을 뚫고 내려갔다. 94선 붕괴는 구조적인 약세장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런 달러 안티 대열에 앞장선 것은 코로나19 회복기금으로 재정적 통합을 이뤄낸 유로였다.

무엇이 변했을까.

당초 코로나19에 심각한 피해를 봤던 미국이 아닌 경제들이 경제 재개 국면에 돌입했다. 반면 미국에서는 신규 감염이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미국 주들이 광범위한 셧다운에 비교적 늦게 돌입하면서 최근까지 미국 경제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회복력을 보였다. 지금은 여러 주가 재개 계획을 뒤집고 있어 오히려 뒤처지고 있다. 그 결과 경제 모멘텀은 미국 밖에서 더 강해졌다. 유로가 달러와 엔 모두에서 상대적으로 좋은 흐름을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 밖에서 자금 속도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야성적 충동이 미국 밖에서 더 빠르게 불붙고 있음을 시사한다. 일부 비(非) 미국 시장에서 자금 흐름이 미국을 상회하고 있다는 증거도 있다.

월가에서는 미·중 분쟁이 무역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선을 넘고 있는 만큼 더는 달러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달리오는 과거 전쟁 사례를 보면 엄청난 갈등이 나타나는 시기에는 혼란을 잠재우고 질서를 세우기 위해 더 독재적인 리더십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으며 양국 긴장이 실제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전 세계에서 달러의 압도적인 역할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적어도 위기 중 패닉에 빠진 금융업자들에게 빠져나갈 구멍으로는 미국이 여전히 최고의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최근 자료를 보면 1분기 달러 결제는 대폭 늘었다. 국제적으로 통화의 중요성에서 자주 언급되는 전 세계 외환 보유고를 보면 달러가 62%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2014년 이후 중앙은행들은 달러 보유 자산에서 벗어나 공격적으로 자산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외국 기관들이 미 국채를 팔고 있다는 게 공식 수치로 증명된다. 외환 보유고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계속 줄고 있다.

여기서 빠져나온 자금 중 일부는 다른 통화, 특히 엔으로 흘러 들어갔지만, 상당 부분은 금으로 들어갔다. 미국과 지정학적 대치 국면 속에서 러시아와 중국 등 이머징마켓 국가들이 이런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통상 금과 S&P500은 반대로 움직이지만, 3월 저점 이후 동시에 올랐다. 투자자들이 미 채권보다는 금을 이용해 주식 롱 포지션을 헤지하고 있어서다. 연준이 시스템에 달러를 쏟아부은 상황에서 금이 논리적인 선택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달러가 붕괴하면 글로벌 유동성 급증이 증폭될 수 있다. 이는 더 나은 글로벌 성장을 돕고, 다시 더 약한 달러를 이끌게 된다.

7월 외환시장에 나타난 대순환(Great Rotation)이 순환적인지, 구조적인지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곽세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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