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강규민 기자 =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독립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BOJ) 등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이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정치권 독립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Fed가 3차 양적 완화(QE3)를 발표하고 나서 정치인들의 비판이 거세졌고, ECB도 새로운 국채매입 프로그램인 OMT(Outright Monetary Transactions)를 공개하자 정치적인 압력에 굴복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BOJ도 두 달 연속 통화완화 조치를 발표했는데, 정부와 공동성명을 내고 디플레이션 탈피를 위해 공조하겠다고 밝히자 독립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것이다.

◆Fed, 100년 전통 자랑하는 '독립성' 훼손 우려 = 시장 전문가들은 31일(현지시간) 미국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100년 넘게 유지된 Fed의 독립성 훼손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재선을 앞두고 경기부양을 추진하고 있는데, Fed가 이를 염두해 QE3를 시행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경제회복을 지속시키기 위해 모든 일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인물로 경기가 개선되면 재선가도에 청신호가 켜진다.

오는 11월6일로 예정된 미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과 경쟁하는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Fed의 QE3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롬니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새로운 Fed 의장을 뽑아 2014년 1월에 임기가 끝나는 버냉키 현 Fed 의장을 교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달 초에 벤 버냉키 Fed 의장의 잭슨홀 연설에 참석한 이코노미스트들 사이에서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등 정치권이 Fed에 압력을 가하면서 Fed의 독립성이 저해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들은 버냉키 의장이 정치권의 압력을 받았다면서 연설에서 지난 2010년과는 다르게 더욱 강력한 경기부양책 시행을 시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치권 일각에서는 Fed의 통화정책을 감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버냉키 의장은 Fed가 이미 감사를 받고 있다면서 통화정책 결정에 대한 감사 면제권을 없애는 것은 Fed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일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Fed의 운영은 외부의 독립 감사업체와 미국 감사원이 심리하고 있으며 Fed의 통화정책 운용을 포함한 재정부문도 감사의 대상이 되지만 정책 결정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않는다.

Fed의 전 부총재인 알란 블라인더 프린스톤 이코노미스트는 "과거 사례를 보면 Fed에 반대하는 세력이 좌파에 몰려 있다"며 "극단적인 목소리를 공화당 후보가 대선에서 당선될 경우가 문제다"라고 언급했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캐런 다이넌 부소장은 "(세계) 중앙은행들이 감시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정치권, ECB의 OMT에 '맹공' = ECB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를 안정시키고자 국채매입 프로그램을 내놓자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의 정치적 압력에 굴복해 중앙은행의 핵심적인 소명과 독립성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ECB에 대한 정치적 압력이 막대하다고 주장하는 위르겐 슈타크 전 ECB 집행이사는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유로존 구제기금을 통해 노골적인 국채 매입을 고려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비판하면서 통화정책이 조건부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슈타크 전 이사는 ECB가 국채를 사들임으로써 유로시스템은 엄청난 위험을 떠안게 되며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의 구분이 흐려진다고 강조했고, ECB가 월권 하는 모험을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와 노선을 달리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ECB의 독립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드라기 총재는 새로운 국채매입프로그램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위태롭게 하거나 납세자들이 과도한 위험을 무릅쓰게 하지 않을 것이며 인플레이션을 촉발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드라기 총재는 또 개입을 유통시장에 제한함으로써 ECB는 중앙은행의 정부 자본조달 금지 규칙을 침해하지 않을 것이고 OMT 관련 결정을 완전히 독립적으로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ECB의 독립성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국가가 정책 조건을 완벽하게 준수함으로써 지켜질 것이고 납세자에 대한 위험은 해당 국가가 건전하지 못한 정책을 펼 때만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런 불건전한 정책은 유로존 재정기금의 규칙에 따라 명시적으로 방지될 것이며 ECB는 언제든지 개입을 중단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BOJ·정부 공조…중앙銀 독립성 훼손 의구심↑= Fed와 ECB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부양책을 내놓는 BOJ도 통화정책 독립성 훼손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일본정부가 BOJ에 노골적으로 강력한 통화완화정책을 압박한 데다 정부와 BOJ가 처음으로 공동성명까지 내면서 통화완화 조치를 두 달 연속으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최근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일본 경제재정상 겸 국가전략상은 일본은행(BOJ)이 올해 초에 정한 인플레이션 목표치 1%를 달성하기 위해 강력한 통화완화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에하라 경제상은 "BOJ가 일본을 디플레이션으로부터 끌어내려면 강력한 완화책을 발표해야 한다"며 "인플레 목표 1%를 달성하고자 BOJ에 통화완화를 제안하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언급했다.

마에하라 경제상은 이달 초에 이어 BOJ 통화정책회의에 두 번 연속 참석해 열석 발언을 한 것도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의구심이 생긴 이유다.

그는 30일 BOJ의 통화정책회의에서 참석하고 나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공동성명이 디플레이션에 맞서는 데 있어 중요한 단계"라면서 "우리(일본정부-BOJ)는 디플레 탈피라는 공동목표를 위해 강한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5일 회의에서도 "엔화가 강세를 지속하는 것과 일본이 디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위기감을 느낀다"며 "BOJ의 통화정책회의에 참석하면서 이 같은 문제점들에 대한 긴박함을 전달하고 싶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의 후지타 쇼고 수석 채권 스트래티지스트는 "이제부터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정치권과 동조될 것"으로 내다봤다.

kkm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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