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현대백화점이 온라인 새벽 배송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초기 투자금액을 지나치게 낮게 설정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미 새벽배송 시장의 과열 경쟁이 심화한 상황에서 시작부터 판을 키웠다가 감당할 수 없는 손실을 낼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데다, 가격과 배송 속도가 아닌 차별화된 전략으로 승부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6일 투자은행(IB) 및 유통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은 지난달 신선식품 새벽 배송 온라인몰 '투홈'을 열기까지 1년 가까이 준비하면서 약 30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 기업인 롯데가 유통계열사 온라인 통합 서비스인 '롯데온'을 만드는데 3조원을 투자하고, 신세계그룹이 쓱닷컴(SSG닷컴)을 시작하면서 1조원을 투입한 것과 비교된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온라인 쇼핑이 급격히 확산하면서 온라인 중심의 사업전략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지만, 새벽배송 부문에 있어서는 보수적이었다.

지난 2018년 국내 백화점 중 처음으로 새벽배송을 시도했었지만, 대형마트가 없어 백화점 점포 중심으로 배송하다 보니 한계가 많았다.

당시 폭풍 성장 중이던 마켓컬리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새벽배송 서비스는 유명무실해졌다.

같은 시기 쿠팡의 식품 새벽배송 서비스 '로켓프레시' 출시, 신세계의 쓱닷컴 출범, 롯데의 대규모 온라인몰 투자 계획 등이 이어지며 새벽배송 시장 판이 커졌지만 정 회장은 여전히 고민했다.

정 회장은 우선 온라인 사업 부문과 전략담당 임원을 불러 300억원 내에서 이커머스 업체를 인수해 새벽배송을 시작할지, 자체 온라인몰을 통해 강화할 것인지 양쪽 모두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실제로 현대백화점은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헬로네이처와 오아시스 등 일부 신흥 새벽배송 업체들에 매각 의사를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 업체의 몸값이 뛰고 있었기에 300억원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마켓컬리의 기업가치가 7천억원에 육박할 때였다.

결국 자체 사업으로 새벽배송을 시작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오프라인 점포의 수익이 급감하고 있었기에 새벽배송 등 온라인 강화 전략을 더는 늦출 수가 없었다.

지난해 이커머스 업계가 추정한 올해 새벽배송 시장 규모는 1조원 정도였는데, 코로나19 장기화로 새벽배송 시장이 1조5천억원 가까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불과 5년 만에 150배 가까이 성장하는 셈이다.

현대백화점은 최저가격이나 주문 후 2시간 내 배송 등을 내세우기보다 상품과 서비스 차별화에 집중했다.

새벽배송 후발주자로서 기존 경쟁사들과 정면승부에 나설 경우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은 백화점 식품관 제품을 통째로 집으로 배달해준다는 콘셉트로, 최근에는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유명 반찬을 매월 정기배송해 주는 구독서비스도 시작했다.

물류창고와 배송 업무를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물류회사 현대글로비스에 맡긴 것도 투자비용을 줄이고 경영효율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다.

새벽배송 업체들의 매출이 급증할수록 적자 폭도 커지는 이유는 물류센터 운영 등에 막대한 비용을 썼기 때문인데, 현대백화점 초기 과다투자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현대백화점그룹의 이러한 보수적 전략 때문에 새벽배송 시장에서 기존 경쟁자들을 위협할 만한 수준으로 성장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유통업계 관계자는 "300억원을 가지고 새벽배송을 시작하겠다는 것 자체가 큰 리스크가 없는 수준에서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라며 "어쩌면 치킨게임에 뛰어들기보다 일단 발을 들여놓고 기회를 엿보는 게 영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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