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안정증권 중도환매 통한 적기 유동성 공급 가능"



(서울=연합인포맥스) 전소영 기자 = 한국은행 현직 간부가 통화정책과 관련한 제언을 한은 내부 게시판에 올렸다가 삭제하는 일이 발생했다.

한은 내부에선 통화정책 관련 여러 목소리가 나오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이 있지만, 초저금리 이후 정책 방향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는 점이 긍정적이란 평가도 나오고 있다.

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서정의 한은 포항본부장은 최근 한은 게시판에 '코로나 19 이후의 경제 위기와 중앙은행의 역할'이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유동성 공급을 통한 실물경제 지원과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통화안정증권을 활용한 양적 완화를 추진하고 금리 인상을 통해 금융안정을 확보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서 본부장은 한국은행 통화정책국과 조사국, 금융안정국을 두루 거친 통화정책 전문가다.

서 본부장은 국민경제의 풀뿌리 근간인 중소·중견기업의 자금 사정이 심각한 데다 소상공인 지원을 무한정 지속하기도 어렵다며, 기업 자금 사정은 상당 기간 압박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또, 저금리로 주택시장이 금융 불안을 넘어 사회 불안을 야기할 수준이라며, 통화가치 안정과 함께 금융안정을 추구해야 하는 한은 입장에서는 주택 혼란을 방치하는 것은 책무 유기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서 본부장은 금융안정을 위해서는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하지만 코로나 19로 경기 부진이 이어지면서 금리 인상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런데도 한은이 경기 부진에 대응하기 위해 저금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원론적 대응에서 벗어나 국가적 어려움을 극복할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 본부장은 그 방법으로 통안증권을 활용한 본격적인 양적 완화로 유동성을 공급해 금리의 상단을 제한하면 금리 인상의 명분을 마련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한국은행은 코로나에 대응해 기준금리를 연 0.5%로 인하하고 정부와 함께 회사채 매입 특수목적기구(SPV)를 설립했다. 하지만 '양적 완화' 단계는 거치지 않았다.

미 연준(Fed)은 제로금리를 도입한 후 양적 완화를 추진하고 별도의 SPV를 설립해 유동성을 공급했다.

미국이 제로금리 또는 실효하한금리 도달과 동시에 이뤄진 이유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초단기 시장금리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라고 서 본부장은 분석했다. 상업금융기관의 자금중개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장단기 금리 상단을 최대한 정책금리 수준에 가깝게 눌러 신용위험 민감도를 낮추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 본부장은 한국에서의 양적 완화 방법으로 통안증권 중도환매를 제안했다. 그는 "통안채는 발행 잔액이 180조 원 내외로, 필요할 경우 언제든지 중도환매할 수 있기 때문에 실행 과정의 어려움 없이 즉각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중앙은행 대차대조표에서는 부채 쪽에서 통안증권이 감소하는 대신 본원통화가 늘어나지만, 양적 완화 효과에는 차이가 없다"며 "중앙정부 재정 부담을 덜 수 있고, 통안채 수요가 국채로 대체되면서 국채시장 불안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필요할 경우 국채 매입을 병행해 양적 완화 강도를 무리 없이 높일 수 있고 정상화하는 과정도 훨씬 용이하다"고 덧붙였다.

서 본부장은 양적 완화와 실효 하한보다 높은 기준금리를 병행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조정예금 금리 상향 조정 등 기술적인 부분도 짚었다. 은행 수익 원천은 예대금리차에 근거하기 때문에 자금조정예금 대규모 예치 가능성은 적다고 진단했다.

서 본부장은 "코로나 이후 창의적이고 합리적인 통화정책 운영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이 어느 때보다도 크게 요구되고 있다"며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두 가지 난제를 연결할 매개체를 확보할 수 있다면, 해결책을 찾는 작업이 가능할 수 있다. 한국은행의 건투를 빈다"고 말했다.

syjeon@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08시 50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