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코로나19 사태가 장기전으로 들어가면서 해외 실사가 어려워진 연기금과 공제회가 해외 사모부채펀드(PDF)로 더욱 몰려드는 흐름이다.

코로나19로 해외 이동이 제한되면서 부동산과 인프라 등 실물자산을 직접 살펴보는 것이 막히자 이미 대체투자용으로 분류한 자산 중 PDF 배분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주요 연기금은 미국계 사모신용펀드(크레딧펀드) 운용사인 골럽캐피탈의 12호 펀드에 1억달러 이상을 출자했다.

이번 출자에는 행정공제회, 군인공제회, 새마을금고중앙회, 노란우산이 참여했으며 각각 4천만달러 수준으로 투자 약정을 체결했다. 투자대상은 연간 상각전영업이익(EBITDA) 기준 1천만달러~1억달러 안팎의 해외 중간 체급 기업이다.

이번 출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연기금 업계에서 나타난 추세의 일면이다.

크레딧펀드는 자금 수요가 있는 기업에 직접 대출하거나 메자닌 자산에 투자하는 PDF 역할도 수행하는 한편 회사채를 비롯해 대출담보부증권(CLO), 상업용부동산담보증권(CMBS) 등 구조화 채권까지 투자 대상으로 삼는다.

한 공제회의 투자책임자는 "코로나19로 해외 실사가 막히면서 해외 부동산·인프라용 대체투자 자금이 묶여 있다"며 "전략적 운용 범위 안에서 대신 PD 출자를 더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금이 부족한 해외 중견기업에 대출해주면서 채권금리 이상인 연 5~6% 중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며 "해외 채권금리가 사실상 '제로'라 구조화 채권 수요가 큰데 크레딧 펀드는 그런 점도 만족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공제회 관계자는 "PD 출자의 경우 주로 캐피털 콜(capital call·필요시 자금 대출) 형식으로 해외 전문 운용사에 맡기기 때문에 해외 실사가 어려워도 가능한 측면이 있다"며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는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응하려 한다"고 말했다.

외국계 사모펀드 관계자는 "연기금과 공제회는 큰 수익 대신 안정적인 연 5~6% 수익을 가장 원하는데 최근 해외 중견기업들의 자금 수요가 많아지면서 PD 시장도 활발해지고 있다"며 "다만 워낙 PD로 자금을 대려는 기관이 많다 보니 정작 기업이 대출 이자를 낮춰 자금을 골라 받는 상황도 생긴다"고 말했다.

연기금과 공제회는 이미 활발하게 PDF에 투자하고 있다.

행정공제회는 지난해 북미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집중하는 해외 PDF 운용사를 선정해 총 2억5천만달러를 배정했다.

교직원공제회도 올해 초 북미 지역을 목표로 둔 PDF 4곳을 선정해 총 2억5천만달러를 약정했다.

사학연금은 현재 미국과 유럽 PDF에 약 4천억원, 공무원연금도 유럽 다이렉트렌딩(기업직접대출)과 오퍼튜니스틱 전략 PDF 등에 총 3천400억원을 출자한 상태다.

PD 시장은 특히 미국이 가장 활성화돼 있다. 까다로운 규제 탓에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등급의 기업이나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기업에 자금을 빌려주고 대출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낸다. 담보가 있는 만큼 사모주식(PE)처럼 큰 수익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위험도 낮다.

최근 연기금이 PD 시장에 더욱 주목하는 배경에는 국민연금의 '참전'이 있다.

국민연금이 이번 달 공개한 '해외투자 종합계획(2020~2024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사모벤처투자실에 2023년까지 사모대출팀과 유통시장거래팀을 신설하기로 했다. 지난해 PDF, 멀티에셋 등 새로운 대체투자 자산에 전체 자산의 2.4%까지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전체 운용자산의 2.4%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약 15조3천억원 수준이다.

국민연금은 그간 해외주식 비중을 늘리고 해외 대체투자 비중은 작게 유지해왔다. 그중에서도 자산을 해외 바이아웃 펀드 등에 출자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자산 규모가 더욱 커지고 자금을 소진하지 못하고 있는 바이아웃 PE도 늘어나는 데다 해외 PD 시장도 활발해지자 이 같은 전략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일부 연기금은 코로나19 장기화에도 해외 대체투자 자산을 PD 부문에 더 늘리지는 않고 있다.

교직원공제회 관계자는 "해외 대체투자 시 부동산·인프라에 투자할 때와 마찬가지로 PDF에 출자할 때 반드시 실사한다는 원칙이 있어 PD에 자금 배분을 늘리지는 않았다"며 "코로나19가 예상외로 너무 길어지자 이제는 실사 없이도 화상 회의 등을 통해 출자할 수 있도록 내부에서 정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jh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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