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아시아나를 인수해 항공산업뿐 아니라 모빌리티 그룹으로 한걸음 도약하겠다"고 했던 정몽규 회장의 야심찬 꿈은 결국 10개월 만에 물거품이 됐다. 모두가 몸을 사릴 때 과감하게 인수·합병(M&A) 카드를 꺼내 들며 관심을 한 몸에 받았지만, 이젠 뒤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두고 머리를 싸매는 처지가 됐다. 국책은행이 나서 인수조건을 대폭 완화해 주고 자금 지원도 파격적으로 해 주겠다고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초래한 불안한 미래를 돌파할 자신은 없었나 보다. 아직 공표만 하지 않았을 뿐 아시아나항공 인수 포기 선언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9월 9일 또는 10일이 디데이(D-day)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매각 주체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말을 아끼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서로의 앞날을 축복하며 손을 잡았더라도 결국 이별 뒤에는 뒷말이 있을 수밖에 없는 법. 아무리 좋은 말을 하며 헤어지더라도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더군다나 2조원이 넘는 대형 M&A 거래가 속절없이 무산되는 상황에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끝날 리 만무할 테고, 앞으로는 누구의 책임이 더 큰지를 따지는 일만 남게 됐다. 법정에서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는 지난한 일이 수년간 지속할 것이다. 그나마 손을 터는 HDC현대산업개발은 계약금 돌려받는 데만 집중하면 되지만, 산은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사정은 간단하지가 않다. 부글부글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산은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자력으로 아시아나항공을 정상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채권단인 산은과 수은이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으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다. 11일 열리는 기간산업안정기금 회의에서 2조원 규모의 자금 지원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단기적인 처방일 뿐이다. 결국 아시아나항공에 빌려준 돈을 주식으로 바꾸는 절차가 진행될 것이고 산은과 수은이 새 주인이 될 것이다. 채권단 관리체제 이상의 새로운 구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은 국영 항공사가 된다. 하지만 이 또한 영속할 수는 없다. 국민 세금으로 민간 기업을 사들여 국영화하는 것은 납세자들이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잠시' 국영 기업으로 변신하는 아시아나항공의 미래를 어떻게 할 것인지로 본질적 문제가 옮겨가게 될 것이다. '대주주 감자→출자전환→채무재조정→채권단 관리 및 경영정상화 추진→재매각'이라는 과거 방식을 고수한다면 대우조선해양의 길을 걷는 것이다. 속절없는 시간은 이어질 것이고 국책은행의 자금 투입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정상화할 것이란 보장도 없고,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기업이 나타날 것인지에 대한 확신도 없다. 불안과 불확실성의 연속이 될 것이다. 도덕적 해이까지 겹쳐진다면 못 볼 꼴들도 나타날 것이다. 대우조선을 통해서 수년간 숱하게 봐 온 모습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채권단은 그저 잠시 아시아나항공을 맡아두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주인 행세 하려고 나서는 순간 모든 일은 어그러진다.

전 세계 항공업계는 코로나19로 엉망진창이 돼 버렸다. 국경을 막으면서 하늘길은 열리지 않고 있고 항공사들이 보유한 수만 대의 항공기는 계류장에 묶여 있다. 각국 정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자금을 투입해 항공사들을 지원하고 있다. 항공사들이 예뻐서가 아니라 항공업이 갖는 특수성 때문이다. 주인이 바뀌는 것은 용납할지언정 항공사가 도산하는 것은 막으려고 사력을 다한다.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 싱가포르 등 각국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국유화하는 것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대한항공은 이미 국책은행서 1조2천억원을 지원받았고 1조원가량의 추가 자금 지원 요청도 고려하고 있다. 산은과 수은은 대한항공이 발행하는 영구 전환사채를 인수하고서 1년 뒤 주식으로 전환해 16%가 넘는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대한항공의 2대 주주가 된다. 산은과 수은이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이 되면 국내 2개밖에 없는 대형항공사(FSC)의 막강한 주주가 된다. 기왕에 이렇게 된 상황이니 항공업 구조개편을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위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다. 산은이 대우조선을 현대중공업에 매각할 당시와 같은 사례를 차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두 항공사의 합병을 위한 중간다리 역할을 할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산은과 수은이 아시아나항공을 직접 경영할 수는 없으니 대한항공에 경영을 위탁하되 국책은행은 지분을 보유하면서 경영을 감시하면 된다. 자금 지원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배구조 상 특혜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은 있다. 대한항공이 반대하면 가능성은 '제로'다.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아예 선택지에서 제외할 것은 아닌 것 같다.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 것 같다.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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