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미란 기자 =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으로 글로벌 전자업계가 격랑에 휩싸였다.

주요 거래선인 화웨이(華爲)와 애플 등이 미중 분쟁으로 생산과 판매에 차질을 겪으면서 국내 전자업계의 실적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엔비디아가 ARM(암홀딩스)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반도체 업계를 중심으로 미중 분쟁이 격화하며 글로벌 전자업계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오리무중의 상황에 부닥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ARM 인수에 대해 중국 당국이 기업결합 승인을 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ARM 인수로 중국 반도체 산업이 미국의 통제하에 처할 수 있어 중국 규제당국이 인수를 불허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ARM은 반도체 개발 기업으로, 반도체 기업에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설계도를 판다.

ARM의 설계도를 활용해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은 전 세계 1천여곳이며, ARM 설계도로 만들어진 반도체는 지난해 230억개, 누적으로는 1천600억개에 달한다.

중국 반도체 업계가 생산하는 제품 대부분은 ARM의 설계에 기반하고 있다.

미국의 집중 제재를 받은 화웨이의 반도체 자회사 하이실리콘도 ARM의 설계를 이용해 스마트폰용 AP를 만든다.

특히 삼성전자와 퀄컴이 ARM의 기본 설계에 자체 설계 기술을 추가해 독자적인 AP를 만드는 반면 하이실리콘은 ARM의 설계대로 AP를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실리콘의 설계능력이 삼성전자나 퀄컴보다 뒤처진다는 의미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ARM의 AP 설계도를 중국 기업들이 활용하지 못하게 할 경우 타격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도체 기업 간 인수·합병(M&A)이 규제 당국의 심사를 넘지 못해 무산된 사례도 많다.

2015년 미국 퀄컴이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NXP를 440억달러(약 50조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지만 중국은 독점 금지규정을 위반했다며 승인하지 않았다.

2013년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와 도쿄일렉트론의 합병도 독점 가능성으로 무산됐다.

양 사의 합병으로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 시장에 대한 독점 우려가 제기됐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라는 산업의 특성상 국가와 기업들 간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게 마련"이라며 "계약이 발표됐지만, 딜 클로징까지는 여전히 험난한 길이 펼쳐져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엔비디아의 ARM 인수를 불승인하는 동시에 반도체 굴기에 다시 한번 힘을 싣고, 창신메모리(CXMT)와 양쯔메모리(YMTC) 등 반도체 업체에 대한 투자를 늘릴 확률이 높다.

일단 내년부터 시작되는 제14차 5개년 경제계획(2021~2025년)에서 최우선 정책은 반도체 산업 진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이 향후 5년간 수천억달러(수백 조 원)를 투입해 신소재 반도체 등 반도체 산업 육성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신시기 반도체·소프트 산업 발전 대강'도 대표적인 지원책이다.

자국 반도체 기업에 최대 10년간 비과세를 약속한 게 주요 내용이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제재가 화웨이에 이어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SMIC나 메모리반도체 기업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등으로 확대되는 것에 대비한 방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게 되면 현재 15% 수준에 불과한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는 시나리오도 예상해볼 수 있다.

국내 전자업계는 이미 미국의 화웨이 제재와 위챗(중국명 웨이신) 사용 금지 등으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을 맞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제재가 발표된 지난 15일부터 화웨이에 반도체 공급을 못 하게 됐다.

미국 기술을 부분적으로라도 활용한 세계의 전 반도체 기업은 미국 상무부의 사전 허가 없이 화웨이에 제품을 팔 수 없게 된 것이다.

반도체 업계는 중장기적으로 화웨이를 오포, 비보, 샤오미 등 중국의 다른 스마트폰 생산 업체가 대체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당장 4분기 실적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서버용 D램 고정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화웨이라는 대형 고객이 사라지면서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다.

특히 화웨이가 미 제재에 앞서 3분기까지 '입도선매'한 반도체 재고가 최소 6개월 치 분량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화웨이의 재고가 모두 소진돼 스마트폰이 중단될 때까지는 대체 매출처로 공급이 늘어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지난해 매출에서 화웨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삼성전자는 3.2%(7조3천억원), SK하이닉스는 11.4%(3조원) 정도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연관 사업도 화웨이 물량 중단과 미국의 위챗 금지에 고심하고 있다.

화웨이에 스마트폰용을 비롯한 올레드(OLED)패널을 공급해온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등 디스플레이 업체도 이번 미국의 제재로 화웨이에 디스플레이 패널 구동칩(드라이브 IC)이 제재 대상에 포함되면서 패널을 납품할 수 없게 됐다.

오는 20일부터 미국이 중국 국민 앱인 위챗에 대한 사용 금지에 나서면서 디스플레이 업계가 받는 타격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애플은 최악의 경우 행정명령에 따라 오는 10월 출시되는 아이폰12의 글로벌 앱스토어에서 위챗을 삭제해야 한다.

중국 현지 이용자가 11억명에 달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위챗이 금지되면 아이폰 판매가 급감하고, 아이폰 패널 공급사로 선정된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매출도 줄어들 수 있다.

mr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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