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 창출이다" 경영학도가 아니라도 한 번씩은 들어봤을 경구다.

뉴욕 출신의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 Milton Friedman · 사진)이 50년전 주창한 명언이다. 프리드먼은 1960년대부터 통화주의(monetarism)를 주창하면서 케인즈 학파에 대항한 시카고학파(The Chicago School)의 정신적 지주다.









프리드먼은 1960~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을 설명하면서 케인즈식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비판했다.

그의 주장은 화폐 공급량의 변동률을 일정 범위에서 억제해야 한다는 통화주의로 이어졌다.

그는 정부의 재정정책을 '샤워실의 바보( in the shower room)'라는 개념으로 비웃기도 했다. 샤워실의 바보는 샤워실에서 물을 틀 때 따뜻한 물이 빨리 나오게 수도꼭지를 온수쪽으로 과도하게 돌렸다가 너무 뜨거우면 깜짝 놀라 얼른 찬물 쪽으로 돌리는 경우를 일컫는다. 찬물이 세게 나오면 따뜻한 물로 성급하게 꼭지를 돌리는 반대의 경우도 포함된다.

경기과열이나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섣부른 시장 개입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는 우화다.

경제정책의 경우 그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차가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영향들이 끼어들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올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프리드먼은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경제 운영에 따른 문제 해결을 시장에 맡기라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논거를 제공했다.

정부는 개인의 생명, 재산, 자유를 지키는 데 집중하고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경제적 자유에 대한 그의 주장은 이른바 주주 자본주의로 이어졌다. 기업활동은 주주의 이해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투자 전문지 배런스 등에 따르면 반세기 동안 맹위를 떨쳤던 프리드먼의 가르침이 이제 퇴색되고 있다. 그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기업들이 단기 이윤 창출에만 집중하면서 전 세계 경제 불평등과 지구온난화가 심화되고 있어서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프리드먼식 자유주의 자본주의가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반성이 본격화됐다. 글로벌 대형 은행은 이익은 자신들이 가지고 부실에 따른 책임은 사회 전체로 전가하면서 공분을 샀다. 기업들이 주주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탐욕적인 활동을 강화하면서 지구온난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우려도 강해졌다.

'기업목적시험(The Test of Corporate Purpose :TCP)'에 의해 실시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기업의 89%는 프리드먼의 주장에 더는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주의 76%도 이제는 프리드먼의 발언을 금과옥조로 여기지 않는 것으로 집계됐다,

TCP는 코로나 19 팬데믹(대유행)과 불평등에 따른 사회불안기에 기업의 활동을 평가하기 위해 올해 결성됐다. TCP는 기업이 이해관계자를 우선하겠다는 기업들의 최근 선언과 공헌이 얼마나 되는지 평가한다.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회장인 래리 핑크는 2018년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Business Round Table)에서 "기업은 모든 이해관계자(stakeholder)에게 이익이 되도록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은 미국 200대 대기업 최고경영자로 구성된 협의체로 한국으로 치면 전국경제인 연합회 같은 이익단체다.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밀턴 프리드먼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기를 든 셈이다. 래리 핑크와 비즈니스라운드 테이블의 이론적 배경이 바로 이해관계자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다. 주주는 물론 종업원, 고객, 지역 공동체 등 모든 당사자들을 위해 기업이 공헌해야 한다는 게 이해관계 자본주의다. 더불어 살기 위한 일종의 수정 자본주의를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당장 라운드테이블에 참여한 203개의 기업들은 4개의 조치를 실천하기로 결의했다. 임금격차를 분석하고, 회사 구성원의 인종 구성을 공개하고, 공급선 다변화 정책을 수립하고, 고용의 다양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역사회 교육프로그램에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이 구상에 참여하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아마존도 팬데믹 기간에 종업원 보호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아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한 듯하다. 50년간 맹위를 떨쳤던 밀턴 프리드먼의 신자유주의가 이제 그 막을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코로나 19를 거치면서 사람들이 항상소득을 기준으로 자신들의 소비수준을 정해 일시적인 소득수준의 변화는 소비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그의 '항상소득 가설'도 여지없이 깨졌다.

자유방임과 통화주의를 근간으로 프리드먼이 이끌었던 신자유주의가 반세기 만에 저물고 있다는 의미다.

혼자만 잘살 수 없다는 점을 월가 구루(GURU)인 래리 핑크 등 자본주의의 심장부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깨닫기 시작했다.(배수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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