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최근 여권과 재계가 대립하고 있는 이른바 '공정경제 3법'이 도입될 경우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더욱 막강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

공정경제 3법 중 상법 개정안은 기업 최대 주주의 권한을 제한하고 일반 주주의 주주권을 강화하는 게 골자인 만큼 대체로 국민연금의 힘은 더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공정경제 3법은 ▲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감독법 등 세 가지 법을 아우르는 표현이다. 이 가운데 상법 개정안에 포함된 다중대표소송제 도입과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도입, 선임 및 해임 규정 개선 등이 국민연금과 기업 간 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법 조항으로 분석된다.

이 가운데 기업들이 가장 강하게 반발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는 국민연금으로선 양날의 검이다.

분리선출제는 기업이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1인 이상)를 이사 선출 단계에서부터 다른 이사들과 분리 선출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 과정에서 최대 주주는 특수관계인 지분을 포함해 아무리 많아도 의결권을 3% 이내로 제한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기존에는 기업이 이사를 먼저 선임한 뒤 이 가운데 감사위원을 선임하도록 했다. 그럴 경우 대주주의 입맛에 맞는 사람이 이사로 뽑히고 다시 감사위원으로 선출돼 독립성이 약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분리선출제는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 중 최소 1명 이상은 이사 선출단계에서부터 따로 뽑고 이때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모두 합산해도 의결권을 3% 이내로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입장에선 감사위원 선출 단계에서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만큼 입김이 더 세게 작용할 여지가 커졌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10월 기준 지분 3% 이상 보유한 상장사는 총 423개로 집계됐다. 국내 상장사 2천43개 가운데 20%에 이르는 수치다.

분리선출제가 도입되면 국민연금은 이들 기업이 감사위원을 뽑는 과정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기업 입장에선 국민연금의 눈치를 더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국민연금이 2대 주주로 있는 171개사에 대해선 막강한 영향력이 예상된다.

다만 국민연금 또한 지분이 아무리 많더라도 감사위원 선출시 의결권이 3%까지만 보장된다는 것은 제약 요인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3법 개정안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며 개정안이 원안대로 시행되면 국민연금도 의결권이 3%로 제한돼 손발이 묶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은 7월 기준 우리나라 1천14개 기업의 지분을 보유 중이며 99개 기업은 지분율이 10% 이상이다.

이경상 대한상의 경제조사본부장은 "정부의 상법 개정안 3%룰은 국민연금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역할까지 침해할 수 있다"며 "선진국처럼 법보다 기관투자가의 감시역할, 기업들의 자율 규범 등으로 개선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법 개정안의 또 다른 축인 다중대표소송제는 국민연금에 상당한 견제력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법상 발행 주식 총수의 1%(상장사의 경우 6개월 전부터 0.01%) 이상을 보유한 주주는 회사의 이사를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종속회사 이사의 행위로 종속사에 손해가 발생하면 지배회사의 주주가 해당 이사에게 책임을 추궁할 방법은 없다.

다중대표소송은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해 지배주주나 경영진의 사익 추구에 대한 사후적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수단이다. 다중대표소송이 도입되면 모회사 주주는 자회사 이사가 회사에 손해를 끼쳤을 경우 자회사 지분이 없더라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국민연금이 지분 0.1% 이상을 보유한 기업 수는 800개에 육박한다. 지분이 1% 이상인 기업 또한 전체의 75%가 넘는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주요 기업은 거의 모두 국민연금의 다중대표소송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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