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미란 기자 = "1987년 회장에 취임하고 나니 막막하기만 했다. 1979년 부회장이 된 이후 경영에 부분적으로 관여해왔지만 그때는 '선친'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책 '이건희 에세이'에서 털어놓은 심경이다.

이 회장은 1987년 12월 1일 제2대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하지만 '영원한 상속자'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부친의 그림자는 너무나 컸다.

1993년까지 이건희 회장은 삼성그룹의 총수로서 이렇다 할 조처를 내놓지 않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의에 강진구 삼성전자 회장을 대리 참석시키고 회사에도 출근하지 않는 날이 많으면서 '은둔의 황제'라는 세칭을 얻었다.

회장 취임 5년차인 1993년. 삼성 역사에 남을 중요한 해가 밝았다.







이때까지 삼성 경영진의 관심은 지난해에 비해 얼마나 많이 생산하고 판매했는가에 집중돼 있었다.

실제로 삼성이 만든 제품은 동남아 등 일부 시장에서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을 뿐, 미국, 일본 등 선진국 시장에서는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이 회장은 "이대로 가다간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내가 등허리에 식은땀이 난다"는 발언과 함께 1993년 2월 전자 관계사 주요 임원이 참석한 미국 로스엔젤레스(LA)에서 전자부문 수출상품 현지비교 평가회의를 주재했다.

삼성이 잘한다고 자부하며 만든 제품들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자는 취지였다.

현지 매장에서 삼성 제품은 고객으로부터 외면받아 한쪽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놓여 있었다고 한다.

당시는 삼성이 8㎜ VTR을 막 개발해 시장에 내놓던 시기다.

이 회장은 임원들과 함께 이를 둘러보며 "삼성이란 이름을 반환해야 한다. 한쪽 구석 먼지 구덩이에 처박힌 것에다 왜 삼성이란 이름을 쓰는가?"라고 탄식했다.

같은 해 6월 4일 이건희 회장은 일본 도쿄에서 삼성의 경영 현장을 지도해 온 일본인 고문들과 삼성이 지닌 문제점들에 대해 회의를 열었다.

삼성전자 정보통신부문 디자인부서를 지도했던 후쿠다 다미오 고문은 삼성이 개발을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시장에 물건을 내놓는 타이밍도 놓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올렸다.

도쿄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 회장은 후쿠다 보고서를 읽고 또 읽었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이건희 회장은 세탁기 조립 라인에서 직원들이 세탁기 덮개 여닫이 부분 규격이 맞지 않아 닫히지 않자 즉석에서 덮개를 칼로 깎아 내고 조립하는 모습이 담겨 있는 품질고발 사내방송 프로그램 비디오테이프를 받아 보고 재차 충격을 받았다.

이 회장은 득달같이 이학수 비서실 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녹음하시오. 이게 그토록 강조했던 질 경영의 결과란 말이요. 당장 사장과 임원들 모두 프랑크푸르트로 집합시키세요"라고 했다.

그리고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캠핀스키 호텔에서 삼성의 역사를 바꾸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나온다.

그는 "삼성은 이제 양 위주의 의식, 체질, 제도, 관행에서 벗어나 질 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압축되는 신경영 선언이다.







이때부터 신경영을 전파하기 위한 회의와 교육이 숨 가쁘게 이어졌다.

6월 24일까지 프랑크푸르트, 스위스 로잔, 영국 런던에서 이건희 회장이 주재하는 회의와 특강이 이어졌다.

7월 4일부터는 일본에서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로 옮겨가며 8월 4일까지 회의와 특강이 계속됐다.

1993년 6월부터 8월 초까지 프랑크푸르트에서 도쿄에 이르는 대장정을 통해 이건희 회장은 사장단, 국내외 임원, 주재원 등 연인원 1천800여 명을 대상으로 회의와 교육을 실시했다.

임직원들과 나눈 대화시간은 350시간에 달했으며, 이를 풀어 쓰면 A4 용지 8천500매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신경영 선언으로 삼성은 불량을 없애는 제품의 질부터 혁신을 시작했다.

생산라인을 중단시키더라도 불량을 선진 수준으로 낮추도록 했으며, 한 품목이라도 좋으니 세계 제일의 제품을 만들기로 했다.

질 위주로 가기 위한 삼성의 의지를 보여 준 사례가 1995년 3월에 있었던 불량 무선전화기 화형식이었다.

삼성전자의 무선전화기 사업부의 제품 불량률은 11.8%에 달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에서 수준 미달의 제품을 만드는 것은 죄악이다. 회사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며 고객들에게는 사죄하는 마음으로 불량제품을 무조건 새 제품으로 교환해주는 조치를 취했다.

또 수거된 15만 대, 150여억원어치의 불량제품이 화형식을 통해 전량 폐기 처분했다.

자기 손으로 만든 제품이 불타는 것을 보면서 임직원들은 눈물을 흘렸고, 현장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부실 요인을 찾아 고치는 풍토가 그룹 전체에 확산됐다.

삼성은 또 불량품이 발생하면 그 즉시 라인을 멈추는 라인스톱제도를 도입해 불량률 제로에 도전했다.

mr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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