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연합인포맥스) 이효지 기자 = 정부와 여당이 기업 총수들의 사익편취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도를 높인다.

계열사를 동원해 총수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를 막겠다는 취지다.

과거에 비해 계열사를 활용해 승계 구도를 짜보려는 사례가 축소되기는 했지만, 규제 강도가 높지 않아 총수와 일가가 사익을 편취하려는 시도가 여전하고 이는 궁극적으로 기업의 비정상적 경영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강화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준수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지분 매각을 동반할 수도 있고, 이는 기업 경영권에 심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반발한다.

◇ 일감 몰아주기 사각지대 막아야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르면 공정위는 총수 일가 지분 30% 이상 상장회사·20% 이상 비상장회사를 대상으로 하는 일감 몰아주기(사익편취) 규제 기준을 별도 구분 없이 '20% 이상'으로 통일하고, 그 계열사들이 50% 초과 지분을 가지고 있는 자회사까지 규제 범위를 넓혔다.

공정위가 규제 범위를 넓히려는 이유는 지난 2013년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도입되고 나서 기업들이 이 규제 기준을 피해 법망을 빠져나가고 있어서다.

대기업들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기준 이하로 지분을 팔거나 자회사를 통해 내부거래를 하는 방법으로 규제를 벗어났다.

공정위가 내놓은 '대기업집단 소속 주식 소유 현황'에 따르면 현대글로비스, LG, KCC건설, 코리아오토글라스, 태영건설 등이 총수 일가 지분이 20% 이상 30% 미만으로 규제를 살짝 비껴갔다.

또 358개사가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의 지분을 50% 넘게 보유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공정위로부터 규제 사각지대에서 내부거래를 하는 회사로 지목된 삼성물산 100% 자회사인 삼성웰스토리, 현대차그룹 계열의 현대첨단소재 등이 포함된다.

◇ 규제 대상 3배 늘고 10조원어치 지분 매각해야

재계는 계열사 간 거래 전반이 위축되고 지주사 장점이 사라지는 등 일감 몰아주기의 여파가 작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대기업집단 중 총수가 있는 55개 대기업집단을 조사한 결과 전체 2천108개 계열사 중 209곳(총수 일가 지분율 상장사 30%, 비상장사 20% 이상)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기업으로 집계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따르면 이들이 규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팔아야 하는 지분 가치는 10조8천억원에 달한다.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2013년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일감 몰아주기 대상이 된 후 총수 일가 지분을 매각하면서 주가가 15% 급락하는 부침을 겪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지분율 50%가 넘는 자회사는 효율성을 높이고자 사업부로 두지 않고 분사시킨 것으로 내부거래가 많을 수밖에 없다"며 "지주회사를 장려하던 정부가 이를 문제 삼으니 정책 일관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 정상 거래는 허용…총수 일가 승계에 악용 말라

공정위가 모든 내부거래를 눈엣가시로 보는 것은 아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2일 국회 종합감사에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부당한 내부거래를 규제한다는 내용이지 정상적인 내부거래에 대한 규제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경쟁 입찰에 따라 통상적인 가격으로 내부거래가 이뤄진다면 문제 될 게 없다는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내부거래가 주력 업종과 상관없는 시스템통합(SI)이나 부동산 관리 계열사에서 이뤄져 경영권 승계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의혹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서비스업은 내부거래가 통상적인 가격으로 이뤄졌는지를 밝히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일감 몰아주기 제재를 피하기 유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공정위는 5년이나 조사를 하고도 한화 계열사의 한화S&C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청와대 정책실장인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해 재계와 만나 "지배 주주 일가가 지분을 많이 가진 비주력·비상장 회사에 계열사들의 일감이 집중되는 경우에는 그 합리적인 근거를 시장과 주주가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hj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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