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연합인포맥스) 이효지 기자 = 기업들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강력한 무기로 삼아온 전속고발권을 내려놓고, 그 권한을 다양한 권역으로 분산한다.

공정위가 전속고발권을 독점하면서 생길 수 있는 재량권을 최대한 낮추고, 기업들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더욱 촘촘히 차단하기 위해서는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는 게 정부와 여당의 판단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기업들에 대한 사정기관의 옥죄기가 대폭 확대되고, 결과적으로 경영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무엇보다 검찰의 과잉수사 가능성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 시급·중대한 사건의 검찰 수사 확대

전속고발권 폐지 공약은 지난 정부에서도 나온 바 있다.

당시 중소기업청장, 감사원장, 조달청장이 요청하면 반드시 고발하는 의무고발제로 흐지부지됐다가 현 정부에서 재추진 중이다.

정부는 그간 공정위 조사가 부진해 고발이 부진해지자 전속고발권이 대기업 봐 주기용 면죄부라는 비판이 일자 시장 개입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며 조사 권한을 검찰로 넓히기로 한 것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르면 공정위에 신고된 리니언시 사건 중 규모가 커서 경제적 피해가 큰 입찰담합과 공소시효 1년 미만이라 고발 등의 조치가 시급한 사건만 검찰이 우선 수사하게 된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지난해 취임사에서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을 형사 법 집행의 우선 가치로 강조하는 등 의욕을 보였다.

그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있을 때 기존 공정거래조세조사부를 공정거래조사부와 조세범죄조사부로 분리하는 등 공정거래법 관련 사건 수사 역량을 강화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검찰이 오래전부터 공정경쟁 분야에서도 법 집행을 주도하고자 했다"며 "카르텔, 특히 국제 카르텔 쪽을 블루오션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과잉·중복 수사 우려…검찰이 경제분석 할 수 있나

재계는 두 곳의 사정기관을 상대해야 하는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검찰이 우선 수사하는 사건의 범위가 정해지긴 했지만 비슷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공정위와 다른 판단을 내릴 경우 기업들이 재차 삼차 조사를 받아야 할 수 있다.

지난 2016년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계열사 자료를 누락한 것과 관련, 공정위는 검찰 고발 없이 경고 처분을 했으나 검찰이 봐주기 의혹을 제기하면서 공정위를 압수수색하고 김 의장을 약식 기소한 바 있다.

전속고발권 폐지로 경쟁업체나 시민단체의 검찰 고발이 늘어나면 기업의 소송 비용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 2016년 중소기업중앙회 회원사 중 24.7%만 전속고발제 폐지에 찬성했다는 조사가 있다.

공정거래 분야에는 전문성을 보유한 공정위가 전속고발권을 행사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지적도 있다.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따질 땐 시장획정, 경쟁제한성 판단 등 경제분석이 충분히 뒤따라야 하는데 법리 전문인 검찰이 경제분석을 잘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관세법, 조세범처벌법 등 세금 관련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국세청장이나 관세청장, 세관장의 고발이 없으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 수사 확대 우려에 불공정행위 자진신고 축소 우려도

재계는 특히 검찰의 별건 수사를 우려한다.

검찰이 기업의 자진신고 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다른 영역 수사에 활용한다면 어떤 기업이 자진신고를 하겠냐는 것이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주 국회에 출석해 이러한 우려에 대해 "검찰도 별건 수사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며 약속이 이행되도록 외부로부터의 감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행정제재와 형사제재 주체가 공정위와 검찰로 이원화되면서 자진신고를 하더라도 확실하게 제재를 피한다는 보장이 없다.

지금은 리니언시를 하면 공정위가 과징금과 형사처벌을 모두 면제할 수 있지만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부과를 면했더라도 검찰로부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조 위원장은 이에 관해 "리니언시 신청이 공정위 쪽으로 들어오고, 공정위가 먼저 조사를 하는 것을 희망한다"며 "관련 부분에 대해 검찰에 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공정위와 검찰이 견제하는 과정에서 협력보다 경쟁에 치중한다면 전속고발권 폐지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공정위와 검찰은 오랜 기간 긴장 관계를 이어왔으며 지난 2018년 공정위 고위 간부 재취업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공정위를 압수수색했을 때도 리니언시 주도권 다툼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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