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은 올해 1월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그동안 선진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던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를 종식시키고 이해관계자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를 추구해야 한다는 다보스선언을 발표했다. 슈밥 회장은 "기업이 주주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단기적인 관점에서 이윤을 추구해 온 관행을 포기하고 주주를 포함한 소비자, 종업원, 채권자,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했다. 또 "기업은 단순히 부를 창조하는 조직에서 벗어나 정부 및 사회를 포괄하는 더 큰 시스템에 속해있는 이해관계자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90년대 이후 세계 각국은 자국의 경제운용 및 기업경영방식을 둘러싼 제도와 관행을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화 해왔는데, 글로벌 스탠다드는 사실상 '미국화(Americanize)'되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영미 중심의 주주자본주의 철학이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독일, 일본 등도 효율성과 투명성을 강조하는 영미식 자본주의 요소를 도입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왔다.

우리나라도 '6·25 이후 최대 국난'이라 불렸던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IMF(국제통화기금) 등 국제금융기구로부터 구제 금융을 제공받는 조건으로 경제 및 금융의 근간을 바꾸는 새로운 제도와 관행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결과로 주주이익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주주자본주의 문화가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이후 1997년 태국을 시작으로 하는 아시아 외환위기, 1990년대 이후 반복되는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외환위기, 19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움 선언, 2006년 아이슬란드와 터키 등 신흥국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주주자본주의는 더욱 힘을 얻게 되었고 기업이 발전하고 국가경제가 선진화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따라야 하는 도그마처럼 인식되었다. 한마디로 세계경제는 공산주의체제 몰락이전의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 이념전쟁에서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 체제간의 효율성 경쟁으로 변화하면서 주주중시자본주의가 대세로 자리 잡게 되었다. 물론 주주자본주의도 지나친 단기성과주의 지향,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보상 제공, 빈부격차 확대, 고용불안 야기 등의 단점이 있어 미국도 독일이나 일본의 경영방식을 일부 수용하려는 모습도 보였지만 주주자본주의가 상대적으로 우월한 것으로 인식되어 이해관계자의 이익과 협의를 중시하는 독일과 일본중심의 이해관계자자본주의를 대체해왔다.

그러나 이 같은 추세에 변화의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 작년 8월 미국 재계를 대표하는 최고경영자 모임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usiness Roundtable, BRT)은 그동안 기업경영의 철학이 되어온 주주중시자본주의의 종언을 선언하고, 기업의 목적이 주주는 물론 고객, 근로자, 거래기업,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봉사하는데 있음을 선언하여 이해관계자자본주의의 깃발을 올렸다. 특히 BRT는 '기업의 목적에 대한 성명'에서 주주를 위해서도 단기적인 주가부양 보다 기업의 장기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작년 9월 18일자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 1면에는 'CAPITALISM, TIME FOR A RESET(자본주의, 리셋할 시기)'이라는 제하의 기사가 실렸다. 여기에서는 "자본주의가 빈곤을 없애고 생활수준도 크게 향상시켰지만 기업이 주주가치 극대화에만 집중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자본주의가 장기적으로 건전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윤을 고객과 종업원,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와 함께 나눌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연초 다보스포럼에서 이해관계자자본주의의 기치를 들었던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한 기고문에서 "코로나19 사태는 이해관계자자본주의의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고 주장하면서 진심으로 이해관계자자본주의를 지향하는 기업과 단기 수익모델을 추구하는 기업들의 차이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주주자본주의 문제점을 수술하자는 공감대가 주주자본주의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영국과 미국에서 먼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의 흐름을 바꿀 새로운 방안으로 제시된 이해관계자자본주의는 기업의 공익적 책임을 강조하여 모든 이해관계자와 공존 공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업이 꾸준한 이익을 창출하는 '좋은 기업(Good Company)'을 뛰어넘어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존경받는 기업'으로 가야만 하는 이유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완벽한 자본주의는 없다. 시대정신과 자본주의 기본 원칙에 입각하여 각 제도의 장점을 수용하고 단점은 고쳐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자본주의 패권은 변화한다. 달라지는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국제 경쟁에서 낙오될 뿐이다. 이러한 변화가 우리 기업과 증권시장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판단하여 그동안 우리가 추구해왔던 원칙과 제도, 관행을 점검하고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김재준 전 한국거래소 코스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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