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칼 정관에 '경영상의 목적' 명시 안돼…판례상 인용 가능성↑

긴박한 경제적 상황 고려·경영권 개입 아니라는 점 소명되면 기각↑







(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KCGI가 법원에 제기한 신주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 인용 여부를 놓고 법조계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법조 학계에서 정석으로 받아들여지는 판례를 근거로 보면 KCGI의 주장대로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제3자배정 유상증자는 위법이라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산업은행의 주장대로 국가기간산업인 항공업이 위기인 상황에서 국적항공사의 파산 가능성을 줄이는 동시에 항공업의 재편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논리도 타당한 측면이 있어 가처분 신청이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결국 산은의 한진칼에 대한 출자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등 총수 일가의 경영권을 보장해 주려는 차원이 아니라는 점의 소명 여부에 따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의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 항공사 빅딜은 무산되는 반면에 기각될 경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작업은 순항하게 된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는 25일 오후 5시 KCGI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에 대한 첫 심리를 진행할 예정이다.

산은의 한진칼 신주 대금 납입일이 다음 달 2일이란 점을 고려하면, 1일까지 법원 판단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우선 상법 규정과 대법원의 판례에 따르면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일반 주주를 배제한 채 제3자배정 방식으로 유상증자를 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상법 418조에는 '주주는 그가 가진 주식 수에 따라서 신주의 배정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산은이 제3자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5천억원을 투입해 한진칼 지분 10.7%를 취득할 경우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은 희석되기 때문에 기존 주주들에게 우선 신주를 인수할 의사를 물어야 한다.

다만, 상법과 자본시장법은 '회사 정관이 정한 바에 따라 주주 외의 자에게 신주를 배정할 수 있다'며 예외조항을 허용하고 있다.

한진그룹이 "이번 제3자배정 유상증자는 관련법에 적시돼 있는 '경영상 목적 달성의 필요'를 바탕으로 적법한 절차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에 기반한다.

하지만, 정작 한진칼 정관에는 '경영상의 목적'이 예외조항으로 명시돼 있지 않아 이를 근거로 적법하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법조인들의 의견도 있다.

한진칼 정관 제8조에 따르면 우선주 방식으로 신주를 발행하거나 긴급한 자금조달, 사업상 중요한 자본제휴 등의 경우에만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 로펌의 인수·합병(M&A) 전문 A변호사는 "한진칼 정관에는 '경영상의 목적'이 예외조항 문구에 없기 때문에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추진하려면 '긴급한 자금조달'을 이유로 발행해야 한다"면서 "다만 이 경우도 긴급히 자금조달을 해야 하는 이유가 부실이 심한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서라는 뜻인데,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예외조항이 허용된다고 할지라도, 법원이 이번 제3자배정 유상증자의 주요한 동기가 한진칼 경영권 방어에 있다고 본다면 가처분 신청은 인용될 가능성이 있다.

조 회장과 KCGI,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반도건설로 이뤄진 3자 연합은 지난해부터 조 회장과 한진그룹 경영권을 두고 치열한 지분 싸움을 벌이고 있다.

경영권 분쟁 기업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는 위법이라는 게 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다.

한진그룹은 경영권 분쟁 중이라도 경영상 필요가 인정돼 제3자배정 신주발행이 적법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경우는 지난 2009년 한 개인이 비상장사 한 곳의 신주발행을 무효로 해달라고 한 소송 단 한 건뿐이다.

A변호사는 "당시 이 회사는 거의 망하기 직전이었는데, 소액주주가 90% 이상여서 유상증자가 사실상 불가능했으므로 법원의 기각 결정이 큰 문제가 되지 못했다"면서 "한진칼의 경우는 이러한 특별 사유에 해당하지 않을 뿐더러, '경영상의 목적'을 예외조항으로 두지 않은 기업이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성공한 판례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원이 이번 한진칼 가처분 신청에 대해 법리적인 판단 이외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한다면 기각될 수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산은은 이번 빅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항공업 전체가 위기에 처한 점, 국가 경제 등 다양한 편익 측면을 고려해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불가피한 결정임을 피력하고 있다.

특히 조원태 회장 등 총수 일가의 경영권을 보장해 주기 위한 자금 지원이 아니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한진칼과 맺은 투자합의서에 경영진과 총수 일가를 견제할 충분한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는 점도 부각하고 있다.

산은은 "양대 국적항공사의 통합과 항공산업 구조 개편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한진칼에 대한 보통주 투자가 필요하다"면서 "이번 빅딜이 단순히 두 항공사의 통합뿐 아니라 자회사를 포함한 항공산업 전체를 재조정하는 중요성을 가진 만큼 한진칼에 대한 신규 투자가 구조 개편 작업의 전체적인 지원과 감독에 있어 기대되는 의의와 효용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동걸 산은 회장도 전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이번 합병이 항공산업의 정상화를 위해서 필요하고, 코로나19 시대에 독자생존이 어렵다는 것을 모두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법원에서도 합리적 판단을 내려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 "만약 빅딜이 무산된다면 많은 후폭풍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른 로펌의 M&A 전문 B변호사는 "법리적으로는 KCGI의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는 것이 맞지만 산은이 제3자배정 유상증자의 주체라는 점, 정부가 추진하는 딜이라는 점에서 법원의 판단이 작용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면서 "벌써 기각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말했다.

또 다른 로펌의 C변호사도 "법에서 판례도 중요하지만, 산은의 신주 발행 이유가 조 회장의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이 부각되면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다만, 법원이 산은의 손을 들어줄 경우 향후 그간의 판례를 깰 뿐 아니라, 다른 판결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적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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