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의 분수령이 될 한진칼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와 관련한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1일 기각하면서 '빅딜'의 중심에 섰던 산업은행이 안도하고 있다.

이동걸 회장이 '직'을 내걸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두 항공사 간 통합을 성사시키기 위해 사활을 걸었던 만큼 산은은 법원의 결정을 환영하고 있다.

법원이 KCGI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산은은 빅딜 무산은 물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백기사를 자처했다는 비난과 구조조정 책임론까지 거센 후폭풍이 예상됐다.

하지만 법원이 사실상 산은의 손을 들어줌에 따라 한진칼을 통한 자금 지원으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할 명분을 확보하게 됐다.

산은은 지난 18일 KCGI가 한진칼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위한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신청한 이후 이례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연거푸 개최하고 연일 입장자료를 내면서 두 항공사 통합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산은은 의결권이 동반되는 한진칼 보통주 투자를 통해 직접 주주로 참여해야 감시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다는 논리로 한진칼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산은이 한진칼의 8천억원 규모 제3자 유상증자에 참여해 한진칼 지분 10.6%를 획득해 조 회장 측에서 경영권 다툼에 개입할 의지가 있다는 KCGI 측 주장에 대해 산은은 한진칼과 맺은 7대 의무조항을 공개하기도 했다.

특히 이동걸 회장은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조 회장이 한진칼 보유 지분 전부를 투자 합의 위반에 대한 담보로 제공했고, 경영 성과가 미흡하면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기로 했다"면서 "누구도 편들지 않는 중립적 위치에 서서 어느 쪽도 일방적으로 지원하지 않겠다"며 특혜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또 항공업 구조 개편 작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려면 콘트롤타워인 한진칼 투자가 최선의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단순히 양대 국적 항공사 통합을 넘어서 저비용항공사(LCC), 관련 자회사의 기능 재편까지 맞물리는 항공업 재편 작업의 일환이기에 대한항공이 아닌 한진칼에 자금 투입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법원도 산은이 향후 이사회에서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겠다고 한 공개적으로 언급한 이상 조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한진칼 유상증자에 참여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이와 함께 제3자배정 유상증자가 현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이라는 산은의 주장도 받아들였다.

결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위기에 빠진 항공업계 재편을 위한 '경영상 목적 달성을 위한 조치'였다는 점을 법원이 인정한 셈이다.

재판부는 "신주 발행은 상법과 한진칼의 정관에 따라 한진칼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통합 항공사 경영이라는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진칼 현 경영진의 경영권·지배권 방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신주를 발행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아울러 이번 딜이 무산될 경우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 관리하에 힘겨운 경영 정상화 과정을 거치게 되고, 국민 세금이 수조원 추가로 투입될 수 있다는 산은의 주장도 법원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당초 법조계와 시장에서는 과거 판례 등을 비춰봤을 때 경영권 분쟁 중인 기업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 추진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항공업 구조조정 명분은 있지만, 산은이 직접 경영권 분쟁의 '선수'로 뛰어드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산은은 법원의 "가처분 신청 인용 시 아시아나항공은 연내 파산이 불가피하다", "항공산업은 붕괴되고 10만 일자리도 지키기 어렵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고, 금융위원회와 국토교통부 등 정부도 나서 이 같은 산은의 호소에 힘을 보탰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 주도의 항공산업 재편이라는 큰 틀의 입장을 피력한 것이 법원 판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여전히 두 항공사 통합과 관련한 의문점은 남아있지만, 법원의 이번 판결로 산은은 명분을 얻었고 그에 따라 통합 작업에 속도를 낼 것이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법원이 일단 산은 손을 줬지만 항공사 통합과 관련해 다방면에서 나온 지적들에 대해서는 산은도 분명히 인식을 해야한다"면서 "통합 이후 시너지가 예상과 달리 저조하거나, 경영권 분쟁 문제와 불가피하게 엮인다면 뒤늦게 책임론이 불거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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