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가입자 복지투자의 하나로 실버론(노후긴급자금 대부사업) 제도가 있다. 실버론은 만 60세 이상 국민연금 수급자에게 전·월세 보증금, 의료비, 배우자 장제비, 재해복구비 등의 용도로 긴급 생활안정자금을 대부하는 사업이다. 금융권에서 소외된 고령자에게 긴급한 자금을 대부해 사금융 등 고금리에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고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노후생활보장 강화하는 걸 목적으로 한다. 실버론이 시행된 이후 2020년 9월 기준 총 6만8천88명에게 3천279억원이 대출되었다.

실제 본 제도는 무담보·무보증을 기본으로 하지만, 대출금에 대한 상환은 수령하는 연금으로 한다. 대출금을 모두 상환하기 이전에 연금 수급자가 사망하게 되면 그 분의 실버론 대출은 부실이 된다. 이에 대해 한때 실버론에 대해서 보증수수료를 설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필요성을 주장하는 입장은 개인이 대부하는 것에 대한 수익자 부담 원칙과 기금의 수익성 보존을 강조한다. 실버론을 대부한 수급자가 사망함으로써 대출 반환을 갚지 못하게 되면 이는 직접적으로 기금 수익에 손실이 되므로, 그간의 손해율을 반영하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금운용 그 자체만의 입장에서 본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기금의 운용은 수익률을 최대로 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으로, 기금에서 대부된 대출금이 손실이 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보완장치를 두고 있다. 실제 법상 급여로 받는 연금은 그 수급권과 급여는 보장받고 있으나, 연금 급여로 실버론을 공제할 수 있다. 기금의 안정성을 위해서다.

하지만 기금을 운용하는 근본 목적인 제도적 관점으로 생각을 조금만 올려보자. 원래 기금은 국민연금제도를 운영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다. 기금운용자에게 있어서는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실버론을 갚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들이 기금의 안정성을 저해한 것일까? 기금만의 안정성은 저해되어도 제도 안정성은 더 크게 높였다는 것이 답이다. 실버론 대출자분들은 연금 수급자임에도 기금운용에 이자 부문의 기여를 하고 있는 분들이고, 불행히도 빠르게 돌아가신다면 실버론을 다 갚지 못해도 그 금액의 몇 배 되는 금액을 수급하지 못하신 것이다. 이를 인식한다면 최소한 공적연기금 수급자에게 대부되는 실버론에 '수익자 부담 원칙'이라는 말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기금을 운용함에 있어서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기금의 수익으로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보강하는 것이다. 만일 기금투자가 수익률을 우선으로 함에 따라 출산율을 낮춘다든가, 일자리의 감소 혹은 퇴직자들의 지출 확대 내지는 가입자의 소득을 저해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반대로 투자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아도 출산율을 높인다든가, 일자리의 증가 혹은 퇴직자들의 지출 감소 내지는 가입자의 소득을 개선하는 사업이 있다면 어떨까?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 가입자에게 좋은 것만을 투자할 수는 없다. 장기적인 수익률에 기초한 연금제도의 지속성 강화라는 기금의 본질적 역할에 위배된다. 기금운용에 있어서 스튜어드십 코드에 기반한 수탁자 책임으로서의 원칙 역시 이러한 기조와 그 맥을 같이한다. 수익을 보는 데 있어서 자산운용사와 관점이 다른 이유다.

국민연금 기금을 운용한다는 것은 다양한 관계자의 시각에서 여러 입장을 함께 조망하여야 하는 일이다. 여기에 기금운용의 딜레마가 있다. 기금운용을 통한 수익률을 최대화하여야 하는 노력과 제도적인 면에서도 바람직해야 한다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다. 그리고 가끔은 수익률을 포기하더라도 제도 안정성과 가입자의 이해를 추구하도록 기금운용자에게 요구할 수도 있다. 수익률을 우선 과제로 하는 기금운용자들에게 이러한 제도적 문제는 한참 열기를 가하는 운용에 찬물이 될 수도 있다.

국민연금의 본래 목적인 제도의 지속성을 위해서라도 수익률 우선의 열기에 한 두 개의 얼음으로 냉정함을 찾을 수 있는 약간 덜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필요할 때가 아닌가 한다. (원종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투자정책전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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