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 새해가 밝았다. 2020년 우리를 괴롭혔던 코로나19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 가계의 미래는 밝지 않다. 어떻게 또 한 해를 버텨낼지 불안하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불확실한 미래와 불안정한 현재이다. 백신으로 코로나에 대한 면역이 생기고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어떠한 상황이 벌어져도 잘 견딜 수 있도록 잘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 걱정이다. 2020년 대한민국 가계는 어떻게 살아왔고, 2021년은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2020년부터 돌아보자. 가계소득은 어땠을까. 가장 최근 통계인 통계청의 '2020년 3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전국 2인이상 가구의 평균소득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전년동기 대비(이하 누적기준) 3.3% 증가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근로소득이 1.5% 감소했지만 이전소득이 31.7% 증가했기 때문이다. 긴급재난지원금 등 정부로부터의 공적이전소득이 급증한 결과로, 이전소득 증가가 없었다면 가계 소득은 0.5% 줄어들었을 것이다.

지출은 어떠했나. 지출은 소비지출과 조세, 공적연금, 사회보험 등의 비소비지출로 나뉘는데, 각각 1.7%, 2.9% 감소했다. 소비의 경우 식료품(16.4%), 보건(9.2%) 등의 지출이 늘어났지만 오락문화(-24,9%), 교육(-22.6%), 의류신발(-15.6%), 음식숙박(-7.5%) 등의 지출이 크게 줄어든 결과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생활 증가, 그리고 코로나에 대한 경각심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파악된다.

소득은 줄어들지 않았고 지출은 줄었다면, 저축이 그 만큼 늘어났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을 차감한 흑자액은 전년동기 대비 22.3% 급증했다. 이는 실물자산이나 금융자산의 증가로 이어졌다. 물론 가계의 자산 증가애는 저축만 사용되는 게 아니라 당기의 부채 증가가 수반될 수 있다. 한국은행의 자금순환통계에 따르면 2020년 2분기까지 은행 등 예금취급기관(이하 은행) 대출이 전년동기 대비 7.8% 늘어나면서 가계 금융부채가 6.5% 증가했다.

이처럼 소비하지 않은 돈과 빌린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역시 2분기까지의 자금순환통계에 따르면 은행 단기예금이 14.9%, 증권사 RP, CMA, 고객예탁금 등이 27.2%, 국내외 주식투자가 10.8% 증가했다. 또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주택 매매거래량은 2020년 11월까지 전년동기 대비 65.8% 급증했다 즉, 가장 안전한 단기예금과 위험자산인 주식과 부동산으로 자금이 집중됐다. 전자가 대기성 자금이라고 보면 향후 위험자산을 더 확대할 준비가 되어있는 셈이다.

2020년 대한민국 가계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근로소득이 감소했지만 정부로부터의 이전소득이 늘어나 전체소득은 소폭 증가했다. 하지만 앞날이 불안하고 갈 데도 없으니 소비지출을 줄이고 저축을 늘렸다. 자금사정에는 여유가 있었지만 불안한 주택시장과 오를 것 같은 주식시장에 투자하기 위해 대출을 크게 늘렸다. 미시적으로 보면 코로나19와 정부정책에 잘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언제나 그렇듯 매우 합리적인 선택을 한 해였다.

그렇다면 2021년에는 무엇이 달라질까. 2020년과 같은 이전소득 증가가 어렵다고 보면 소득 증가가 쉽지 않고, 코로나19가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면 소비 감소와 저축 증가 현상이 지속될 전망이다. 다만, 작년의 기저효과로 인해 소비가 회복되는 착시는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산시장의 향배이다. 대출규제가 강화되기 때문에 가계부채의 증가세는 둔화되겠지만, 대기성 자금이 워낙 많기 때문에 주식이나 주택 매수세는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상의 논의가 갖는 한계는 명확하다. 가계를 하나의 동질적인(homogeneous) 단위로 본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가계는 동질적이지 않다.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가, 지출 대비 소득이 많은가,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이 많은가, 은행 대출을 이용할 수 있는가, 1인 2인 또는 3인이상 가구인가 등에 따라 경제여건과 정부정책에 대한 대응이 다를 수밖에 없다. 앞서의 논의는 금액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소득과 자산이 많은 계층의 행태가 주로 반영된다.

통계청 분류기준에 따라 소득 하위 20%, 즉 1분위 가구의 평균은 작년 3분기 기준으로 가구원수 2.4명, 가구주연령 61.8세, 흑자율 -18.2%이다. 반면 상위 20%, 즉 5분위 가구는 평균 3.5명, 49.6세, 42.7%를 기록해 1분위와는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만성적 적자인 1분위 가구주의 고연령에 주목하고 싶다. 실제로 2분위부터 5분위까지 가구주의 평균 연령은 49.6~51.5세로 별 차이가 없는 반면, 1분위 가구주는 상위 소득계층보다 10세 이상 많은 특징을 보인다.

생애주기상 가구주가 은퇴한 이후 근로소득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빈곤에 빠진다는 얘기이다. 1분위 가구 소득에서 근로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34%로 가장 낮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알려진 대로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이 가장 높다. 따라서 가계 양극화 문제는 기본적으로 연령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주택보유 여부 등을 기준으로 한 접근은 그 다음이다. 하우스푸어가 늘어나는 현실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배현기 웰스가이드 대표)

※칼라무스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Calamus Gladio Fortior)'라는 라틴어 문장에서 따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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