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LG전자가 결국 '아픈 손가락'을 잘라 내기로 했다. 수술로는 제 기능을 복원하는 게 쉽지 않다고 판단한 듯하다. 1995년 시작한 휴대전화 사업을 접을 수 있음을 암시했다. 구조조정을 통해 무언가를 다시 회복시키는 차원이 아니다. 스마트폰 사업부를 분할해 매각하는 것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한다. 베트남으로 옮겨 놓은 생산 시설을 팔고, 연구개발 인력들은 전환배치 하는 방식으로 사업에서 손을 뗄 수도 있다. "냉정하게 판단해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권봉석 사장의 메시지는 결단의 종착역에 다다랐음을 시사한다. 누적적자 5조원에 이르는 애물단지 사업을 그냥 놔둔 채 미래를 얘기할 순 없었을 것이다.

지난 2011년 11월 3일로 돌아가 보자. LG전자는 1조1천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나서겠다는 소식을 갑작스럽게 발표한다. 1998년 보통주 유상증자와 2000년 상환우선주 발행 이후 유상증자는 처음이었다. 시장은 발칵 뒤집혔고 주가는 폭락했다. 어떤 증권사는 보고서에서 "뒤통수를 맞았다"라고까지 했다. LG전자는 경쟁력을 강화하고 투자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일각에서 제기된 유동성 위기설을 진화하기에 바빴다. 유상증자는 애플의 '아이폰 침공'에서 시작된 스마트폰 쇼크에 기인한 측면이 강했다. 피처폰을 대거 축소하고 보급형 스마트폰인 옵티머스 등을 통해 재기를 모색했지만, 실적 악화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선택한 것은 대규모 자금 투입이었다. 메가 히트 스마트폰 모델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애플, 삼성전자와 맞짱을 뜨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돈을 쓴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모바일 사업의 실적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종전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LG전자의 이번 결정은 10년 전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고민의 흔적이다. 하이엔드 시장은 이미 애플과 삼성전자가 양분하고, 화웨이 등이 중저가 시장을 잠식한 상황에서 LG전자가 끼어들 틈은 없다. 글로벌 시장에서 1~2% 남짓한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30년 가까이 해 온 전략 사업을 관둔다는 것은 쉬운 결정은 아니다. 누군가에겐 책임을 물어야 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새로운 과제를 안겨줘야 한다. 복잡하게 얽혀서 돌아가는 LG전자와 같은 큰 기업에선 더더욱 쉬운 결정이 아니다. 그런데도 살기 위해선 결단을 해야 한다. 이번 결정에 시장이 환호하는 것도 그런 결정을 높이 샀기 때문으로 보인다.

기업들은 수시로 사업을 재편하면서 있는 사업을 없애고, 새로 만들고 때로는 다른 기업을 인수·합병(M&A)하면서 성장을 추구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총수가 중심이 된 기업 체제 속에서 이러한 활발한 경영활동들은 무언가 뚜렷한 계기가 있을 때만 더욱 도드라진다. LG그룹이 바로 그렇다. 구본무 전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4세 경영체제를 시작한 구광모 회장이 딱 그런 케이스에 해당한다. 2018년 7월 2일 회장 직함을 달고 처음 출근할 때의 일성은 너무나도 짧았다.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개선해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것과 영속하는 LG를 만들겠다는 게 전부였다. '불혹(不惑)'의 나이에 재계 서열 4위 대기업 그룹 총수에 오른 젊은 경영인의 공격적인 발톱은 당시만 해도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총수에 오른 지 2년 반이 지난 현재의 LG그룹은 격변 그 자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LG그룹 내에서 벌어진 일들을 찬찬히 뜯어보면 숨이 찰 정도다. 워밍업을 끝낸 젊은 총수가 앞으로도 '영속할 수 있는 LG'를 만들기 위해 판을 강하게 흔들고 있다. LG화학에서 배터리 사업을 떼어낸 데 이어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마저 철수할 수 있다고 공식화한 것은 변화의 강도가 적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사이 이런 저런 사업과 지분을 팔면서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에는 적잖은 변화가 나타났다. 오른팔과 왼팔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선 기존의 영양 체계로는 힘들다는 것을 확고하게 인식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방향은 잘 잡았다고 생각한다.

총수에 오른 구 회장이 첫 시무식에서 강조한 말은 '고객'이었다. 신년사에 담긴 '고객'이란 단어는 30여 번에 달했다. 기업가치는 최종 소비자인 고객에서 나온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본 정신을 다시 깨우자고 당부했다. 고객의 삶을 바꾸고 감동을 줘야 한다고 했다. 구 회장의 말속에 LG전자 스마트폰의 실패가 투영돼 있었던 것 같다. 고객이 감동하지 못하는 제품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최신 기술을 총동원해 만든 제품이라고 자랑한들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선뜻 지갑을 열 고객은 없다. 공급자 중심의 사업 구조는 이미 생명을 다했다. 수요자의 마음을 사지 못하는 기업은 죽는다.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가 만들어 놓은 토대의 판을 흔들면서 추구할 미래가 무엇일지를 시장에 보여줘야 할 책임은 이제부터 고스란히 구광모 회장의 어깨에 놓였다. 구 회장은 과연 어떤 감동을 줄 것인가. 시장과 고객은 오래 기다려 주지 않는다.(기업금융부장 고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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