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발본색원', '패가망신', '분노와 실망'. 대통령, 국무총리, 여당 대표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의 강도가 심상치 않다. 모든 이슈를 덮어버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의 여론 지형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음을 직감한 것이다. 가뜩이나 '부동산 민심'이 좋지 않은 마당에 터진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더군다나 공공주도의 공급대책을 통해 민심을 추스르려던 정부의 야심에 찬 계획은 초장부터 꼬이고 있다. 공기업 직원들이 세금으로 토지 보상을 받으려고 신도시 후보지 땅을 미리 사뒀다는 것이 탄로가 났으니 정부 정책의 신뢰는 이미 바닥으로 추락했다.

투기와의 전쟁을 통해 부동산 안정화에 총력을 다하겠다던 정부의 선언은 공염불이 됐다. 정부 정책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은 그래서 강한 배신감을 느낀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 '영끌'이라는 비난까지 들으며 집 한 채 마련해 보겠다고 아등바등했던 젊은 세대들의 실망감은 더욱 크다. 상황이 이럴진대 누가 누구에게 투기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디에 생선(알짜 땅)이 있는지를 안 고양이들(LH 직원들)이 미리 자리를 선점하고 양념장을 만들고 있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LH에 '한국투기공사'라는 비아냥이 쏟아져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을 제기한 것은 지난 2일이었다. 하루 만에 문재인 대통령은 투기 의혹에 대한 전수조사와 더불어 엄중한 대응을 지시했다. 국무총리실을 중심으로 합동조사단이 꾸려지고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간다. 하지만 지난 4일 LH를 산하에 둔 국토교통부의 변창흠 장관은 찬물을 끼얹는다. MBC 기자와 만난 변 장관은 "LH 직원들이 개발 정보를 알고 땅을 미리 산 것은 아닌 것 같다. 신도시 개발이 안 될 것으로 알고 샀는데, 갑자기 신도시로 지정된 것 같다"고 했다. 투기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마당에 주무 부서 장관이 뜬금없이 투기를 벌인 직원들을 비호하고 나선 것이다. 문제의식 자체가 없는 것으로 읽힐 정도였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이낙연 대표에게 불려가 호된 질책을 당하고서야 변 장관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LH 직원들의 투기 행위를 두둔한 것처럼 비치게 된 점이 자신의 불찰이었다는 반성문을 썼다. 하지만 늦었다. 2일 참여연대와 민변의 문제 제기가 있었던 직후 대통령이 먼저 나서기 전에 변 장관은 선제적으로 움직였어야 한다. 주무 부서 장관이라면 응당 그래야 했다. 더군다나 얼마 전까지 LH의 수장이었던 사람이 바로 변 장관이었다. 자신의 재임 기간 직원들이 벌인 투기판을 두둔하는 게 제정신인지 묻고 싶다. 장관이 된 지금의 생각이 그럴진대 과거 LH 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직원들이 벌인 비리 행위가 눈에 보였을까 싶다.

변 장관의 '나이브'한 처신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시절 2016년 구의역 사고와 관련해 사고 피해자가 잘못한 것이라는 식의 발언을 한 것이 알려지면서 장관 내정 직후 큰 곤욕을 치렀다. 그런데도 변 장관이 살아남은 것은 그가 부동산 전문가로서 막힌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숨통을 뚫어줄 것이란 일말의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의 잘못된 '반노동 인식'이 무마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변 장관은 이번에도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뱉어내고 사과하면 무사통과할 것이란 생각 때문은 아니었을까. 청와대와 여당은 그저 '관리책임'이라며 변 장관의 책임론을 비켜 가려 하고 있지만, 그렇게 뭉갤 사안은 아니다. '전직 LH 수장' 변창흠 장관의 책임이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공공주도의 공급대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의 신뢰 회복이다. 책임 있는 공직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신뢰 회복을 위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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