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금융거래법을 둘러싼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 간의 다툼은 이제 듣기 싫다. 양 기관이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빅브라더'니, '조금 화난다'느니, '이해 부족'이라느니 하며 감정만 증폭시키고 있다. 평행선을 달리는 두 기관의 볼썽사나운 싸움에 언론도 고개를 돌렸다. '영역다툼'으로 보며 더 이상의 취재를 포기한 모습이다.

디지털금융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금융기관이 아닌 핀테크들이 송금 서비스시장에 속속 참가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잡음이 들리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이 글은 그에 대한 대답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외국은 송금서비스 문제를 일관된 원칙으로 접근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편법과 예외로 대응한다. 현재만 그런 게 아니다. 정부는 2000년대 초반부터 특정 업종에 혜택을 주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법률을 우격다짐 식으로 고쳤다.

편법과 예외가 많아지면 형평성이 흔들리고 금융시스템에 혼란이 생긴다. 그러므로 법과 제도를 손볼 때는 기존의 원칙과 조화를 생각해야 한다. 기득권을 보호하라는 것이 아니라 보편타당한 해법을 찾으라는 말이다.

◇ 외국은 간단명료한 원칙을 통해 영역 다툼을 조정

기술과 금융환경의 변화는 새로운 법률과 규제를 필요로 한다. 미국의 전자자금이체법이 그 예다. 은행창구에서 입출금할 때는 은행과 예금주만 관계된다. 그런데 1960년대 말 ATM이 등장하여 은행 객장 밖에서 플라스틱 카드로 입출금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러므로 단말기와 전자카드를 관리하는 제3자의 법적 책임을 규정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나온 것이 1978년 전자자금이체법(Electronic Fund Transfer Act)이다. 핀테크와 관련한 미국 최초의 입법이었다.

전자자금이체법에서는 기술만 문제되었으므로 오직 큰 소동이 없었다. 그런데 2년 뒤 통화관리법(Monetary Control Act)을 제정할 때는 금융기관 간 기득권 조정이 불가피하여 굉장히 소란스러웠다. 지금 우리나라의 전자금융거래법 개정 논란보다도 훨씬 심각했다. 정책당국 간 마찰이 8년이나 계속되었다.

1970년대까지 미국의 예금수취기관은 국법은행(전국 영업), 주법은행(특정 주에서만 영업), 저축기관(저축은행, 신협. 지역사회와 직장 안에서 영업) 등으로 계층화되어 있었다. 주법은행과 저축기관의 예금금리는 국법은행보다 약간 높아 가격 경쟁력을 갖춘 대신 요구불예금은 취급하지 않았다. 대공황 때부터 이어온 질서였다.

그런데 컴퓨터기술의 발전이 구질서에 변화를 가져왔다. 연준과 국법은행들은 컴퓨터기술을 송금업무에 적용했다. 자동청산시스템(ACH) 즉, 전자어음교환소를 구축한 것이다. 한편 주법은행과 저축기관들은 컴퓨터기술을 수신업무에 적용했다. 저축성예금에 송금 기능을 결합한 신종 예금상품을 개발했다.

주법은행과 저축기관들은 송금 서비스에서 자동청산시스템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깨닫고 문호개방을 요구했다. 연준과 국법은행은 그 요구를 일축했다. 명백한 무임승차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저축기관들은 불공정 경쟁이라는 이유로 연준과 국법은행을 법무부에 고발했다. 이로써 연준, 법무부, 국법은행, 저축기관이 뒤얽힌 소송전이 시작되었다.

1972년 소송이 시작되자 의회가 나섰지만,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았다. 관련된 법률과 상임위원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오랜 진통 끝에 관련 법률들을 초월하는 일관성 있는 원칙에 도달했다. 그 원칙은 "모든 예금취급기관 간의 차별과 특혜 철폐"였다. 즉 주법은행과 저축기관들도 자동청산시스템에 참가하는 대신 국법은행, 주법은행, 저축은행 모두에게 동일한 지급준비의무를 부과한 것이다. 그것이 통화관리법이다.

그 법은 지금도 유효하다. 신용카드사나 핀테크 등 지급준비금이 없는 기관은 자동청산시스템에 참가하지 않는다. 핀테크의 선불과 후불 서비스는 예금기관(국법은행, 주법은행, 저축기관)의 도움을 통해 수행된다. 그런 것을 두고 금융규제가 과도하다느니, 디지털금융의 발전이 뒤처진다는 말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영국의 해법은 미국과 정반대였지만, 결과는 똑같다. 미국에서 통화관리법이 제정되던 다음해인 1981년, 영국은 오히려 지급준비의무를 전면 폐지했다. 지급준비의무 때문에 상업은행들이 저축은행이나 건축조합 등 여타 수신기관들에 비해 금리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불만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급준비의무를 폐지했는데도 영국의 상업은행들은 지급준비금을 인출하지 않았다. 지급준비금은 송금 서비스의 근거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신용카드사와 핀테크들도 그것을 잘한다. 자신들은 지급준비금이 없으므로 청산업무에 참가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런 결론은 중국도 마찬가지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유명 핀테크는 정식 은행업 허가를 받고 청산업무에 참가한다. 그들이 중국인민은행에 맡겨둔 지급준비금이 청산업무의 밑천이다. 청산은 지급준비금을 가진 기관들끼리의 작업이라는 것은 국제적 상식이다.

◇ 우리나라의 송금 서비스는 무원칙

국제적 시각에서 우리나라를 바라보면 요지경이다. 한국은행에 지급준비금을 예치하지 않은 제2금융권이 은행과 대등한 자격으로 송금서비스를 제공한다. 정부는 2003년 서민금융기관(저축은행, 새마을금고, 신협), 그리고 2008년 증권회사에게 송금 서비스를 허용했다.

송금서비스를 하려면 지급준비금이 필요하다. 그것이 없으면 송금서비스는 택배 서비스가 된다. 즉 돈을 오토바이나 자동차로 운반하는 수밖에 없다. 지급준비금은 그런 물리적 수고를 덜어주는 17세기의 발명품이다. 오래된 상식이라는 말이다.

서민금융기관과 증권사도 지급준비의무는 있다. 예수금 또는 투자자예탁금을 각 중앙회나 한국증권금융에 예치한다. 그런데 그 돈은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각 중앙회나 한국증권금융이 다시 회원사들에게 대출함으로써 결국 해당업권 밖으로 흘러나간다. 한국은행 안에 계속 머물러 있는 은행들의 지급준비금과 성격이 크게 다르다.

결국 서민금융기관과 증권사들은 지급준비금도 없이 청산작업에 참가한다. 은행과 대등한 지위를 누리는 듯하지만, 최종 결제단계에서 들통이 난다. 실제 지급준비금이 없으므로 각자의 거래은행에 개설한 예금계좌를 통해 개별적으로 결제한다. 이런 방법은 본원통화(지급준비금)와 파생통화(예금)의 세계를 넘나드는 편법이자 특혜다. 금융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서민금융기관과 증권사에게만 특혜를 주는 것이 우리나라 송금서비스의 현주소다. 금융당국은 이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다.

◇ 제자리로 돌아가자

기존 법률에서는 송금서비스를 금융기관의 관점 즉, '금전의 수취와 지급'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의 접근방법은 아주 독특하다. 송금 서비스를 금융기관이 아닌 전자지급거래청산업자(금융결제원)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송금서비스를 금융결제원의 '청산과 결제지시' 즉, 전산작업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송금 서비스를 설명하는데 돈이 증발한다.

돈을 빼놓은 채 '송금 서비스 = 전산작업'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문제가 생긴다. 핀테크뿐만 아니라 보험회사, 백화점, 대형 유통업체 등 지급준비금이 없는 기관들도 전산작업에는 참가할 수 있으므로 얼마든지 송금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바다를 빼놓고 항구를 생각하다 보면 산에도 항구를 지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급준비금에 대한 고려가 빠진 전자금융거래법은 출발부터 틀렸다. ('빅브라더법'이기 때문에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논리적 오류라는 뜻이다.)

제자리로 돌아가라. 송금 서비스는 지급준비금이 출발점이며, 이를 배제한 어떤 논의도 공허하다. 전자금융거래법을 포함하여 서민금융기관법, 자본시장법을 묶어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미국 의회는 40년 전인 1980년 그렇게 했다.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노미스마(nomisma)'는 그리스어로 화폐와 명령(법)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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