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 위기는 언제나 선택적 변화를 수반한다. 세대교체는 종종 그 선택지 중 하나였다. 1960년대생 행장이 탄생할 때마다 금융지주는 이를 세대교체라고 명명했다. 저마다의 이유는 달랐지만, 그렇게 경영 전면에 나선 은행장 대다수는 조직의 큰 위기와 적잖은 과제를 떠안아야만 했다.

젊은 행장들이 등장한 지 수년째. 그러나 은행의 위기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진옥동(1961년생) 신한은행장은 채용 비리와 더불어 검찰이 신한 사태라는 뼈아픈 과거사를 다시금 되짚는 과정에서 변화의 주인공이 됐다. 당시 2년 만에 물러나야 했던 위성호 전 행장은 자신의 인사를 퇴출로 정의했고, 진 행장을 국내 경험이 부족하다 일갈했다. 퇴임을 앞둔 행장과 행장 내정자가 유례없이 함께한 이듬해 종합업적평가대회의 공기는 꽤 어색했다. 신한은행은 최근 무리한 서울시금고 유치와 관련해 기관경고를 받았다. 3년 전 치적 탓에 내년까지 신사업에 진출할 수 없게 된 신한은행은 현재 라임사태 제재까지 앞두고 있다.

지성규(1963년생) 하나은행장 선임은 하나금융지주가 금융감독원에 보낸 화해의 제스쳐였다. 금감원의 제동에도 강행한 김정태 회장의 연임, 때마침 최흥식 당시 금감원장이 하나금융 재직시절 채용비리 연루 의혹으로 낙마하며 불거진 갈등은 '포스트 김정태'로 불리는 함영주 전 하나은행장이 채용비리 재판을 이유로 3 연임을 포기하면서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듬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를 시작으로 갈등은 재점화됐고, 연이은 사모펀드 손실로 지 행장은 2년의 임기를 끝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하나금융은 회장 비서실장격인 그룹 경영지원실장을 지낸 박성호(1964년생) 행장을 또 다른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내세웠다.

권광석(1963년생) 우리은행장은 DLF와 라임사태로 진퇴양난에 빠진 우리금융지주 구원투수로 선발됐다. 처음 행장 후보군에 거론됐을 때만 해도 '언더독'으로 평가받던 권 행장이 낮은 연배에도 불구하고 선임된 것은 풍부한 네트워크와 경험 덕이었다. DLF 불완전판매를 이유로 내려진 금감원의 문책경고 조치 등으로 손태승 회장은 금융당국과의 완충제이자 해결사가 필요했다. 하지만 권 행장에게 부여한 임기는 1년. 최근 손 회장은 다시 권 행장에게 임기를 1년 만 연장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시대적 변화의 흐름인지 1960년대생 행장들은 유독 해외 경험이 많다. 혹자는 이를 두고 실무를 모른다고 깎아내리지만, 글로벌사업 부문을 이끌어본 경험은 은행의 중장기 미래를 이끄는데 더없는 교과서다. 빅 테크에 맞서 급변하는 트렌드에 맞출 수 있는 유연함은 덤이다.

"권한은 없는데 책임만 크다"

한 금융권 고위 인사는 최근 은행장들을 두고 이렇게 평했다. 각각의 위기를 겪는 금융지주가 세대교체란 미명하에 내세운 행장들이 과거 잘못을 이유로 큰 책임을 앞둔 현실이 다소 부당하다고도 했다. 최고경영자(CEO)란 이름의 무게란 그런 것이라지만, 과연 조직은 얼마나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을지 의문이라고도 했다.

"더 일찍 조직을 다잡아야 했다"

한 은행장의 속내는 단말마에 가까웠다. 핑계로 들릴까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지만, 지금의 위기가 자신의 책임이라며 괴로워했다.

변화가 없는 위기의 끝은 언제나 실패다. 위기 극복을 위한 선택에 조직은 얼마나 임했을까. 젊은 행장들의 어깨가 오늘도 무겁다. (정책금융부 정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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