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은행들이 안팎으로 수세에 몰리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과 저금리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금융당국이나 기업, 소상공인, 가계 등 은행에 손을 벌리는 곳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까지 가세하는 모양새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1일 한 금융토론회에서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0.5%인데 대출금리는 3~4% 정도"라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해 1%포인트 정도는 내려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관치금융이 아니라 고통 분담 차원에서 필요하다. 금융권이 1년에 수십조 원을 버는데 꼼짝도 안 한다"고 요구했다.

같은 당의 윤후덕 의원도 "담보가치만큼 대출해 주던 은행 창구에서 '정부 방침 때문에 대출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면서 은행의 대출 관행을 질타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은행은 돈 장사를 하는 곳이다. 다만, 사적으로 이뤄지는 금전 등의 대출과 달리 일부 공적 지원이 담보된 예금을 근거로 영업을 하기 때문에 공공성을 요구받는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을 투입받았다는 원죄까지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각종 금융시장안정자금 조달이나 중소기업ㆍ소상공인 대출의 만기 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 등 금융당국이 내놓은 숙제를 묵묵히 이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엄연히 주주가 존재하는 개별기업의 영업활동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일일이 관섭하고 압박하는 것은 금융의 근간에 반하는 시대착오적이란 인식도 적지 않다. 당장 정치권의 요구대로 대출했다가 부실이 생기면 누가 책임지냐는 입장이다. 은행들은 펀드 하나 잘못 팔았다가 최고경영자(CEO)가 금융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는 처지에 돈을 떼일 가능성이 높은 저신용등급의 기업에 대출했다가 떼이면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하냐고 하소연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중은행을 다그칠 게 아니라 먼저 공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국책금융기관을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 한국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중소기업은행 등의 존립 목적은 중소기업이나 수출기업 등에 대한 금융지원이다. 시스템적으로 이들 국책금융기관이 제역할을 할 수 있도록 출자 등을 통해 지원함으로써 그 기능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각종 보증기관의 역할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사실 최근 들어 국내은행의 경영환경도 호락호락하진 않다. 초저금리라는 불리한 거시여건이 지속되는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해 부실징후기업에 대한 대출도 많이 늘어난 상황이다. 여기에 핀테크와 빅테크기업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이 일반화되면서 빅테크나 인터넷전문은행이 앞으로 은행산업의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하고 은행 지형에도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도 커졌다.

코스피지수가 날아가는 상황에서도 은행권 주가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씨티은행은 국내 소매금융시장에서는 이제는 먹을 게 없다고 판단하고 한국 시장에서 철수를 준비하고 있다. 그만큼 국내은행을 둘러싼 안팎의 경영 여건이 어렵다는 방증이다.

경쟁의 격화로 '제 코가 석 자'인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정치권이나 금융당국이 압박하더라도 은행들이 먼저 나서기는 쉽지 않다. 금융의 자금중개기능 등을 이유로 시중은행에 마냥 공공성을 요구하고 어떻게 은행을 통제할지 고민하기에 앞서 개별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극대화하고 전반적인 금융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지원하는 게 먼저다. (정책금융부장 황병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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