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올해 상반기 보험사들이 발행하는 자본성 증권이 사상 최대 규모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금융지주를 포함한 은행권의 전유물이던 신종자본증권과 후순위채는 자본 확충의 급한 불을 끄려는 보험사들의 소화수가 됐습니다. 새로운 회계제도와 감독체계 도입을 앞두고 보험사를 향한 우려도 그만큼 커졌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위기는 기회를 만듭니다. 연합인포맥스는 우후죽순 늘어난 보험사 자본증권이 갖는 의미를 발행사와 투자자 입장에서 담아 진단합니다.>>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피혜림 기자 = "과도기는 혼란하죠. 하지만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큰 변화가 수반하는 과도기의 전략적 접근은 언제나 유효합니다. 규제, 허들을 대하는 인식은 그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대형 보험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쏟아지는 업계 자본증권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모두가 보험사의 떨어지는 자본 건전성만 우려하고 있을 때도,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투자 포인트를 찾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치솟는 금리와 인플레이션 속에서 보험사는 발행사로서, 또 투자자로서 새로운 선택지를 찾고 있다는 얘기다.

◇ 상반기만 4조…보험사, 자본증권 시장 '주변인→주인공' 되다

10일 한국예탁결제원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보험사들이 발행할 자본성증권 규모는 4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까지 발행 규모만 2조3천억 원이다.

이는 자본증권 발행 시장의 큰 변화다. 통상 신종자본증권(영구채)과 후순위채 같은 자본증권은 금융지주를 포함한 은행의 전유물이었다. 이들은 최근 10년간 꾸준히 적게는 2조 원에서, 많게는 8조 원에 달하는 자본증권을 매년 발행했다. 자본증권 발행시장의 70%는 사실상 은행이 주도해왔다.

그간 보험사는 자본증권 시장의 주변인이었다. 본격적으로 발행을 하기 시작한 것은 2017년부터다. 하지만 연간 발행 규모는 2조 원 안팎에 불과했다.

하지만 치솟는 금리에 지급여력비율(RBC) 비율 방어가 시급해진 보험사들은 적극적인 자본증권 발행에 나섰다. 바젤Ⅲ 도입을 앞둔 은행들이 그러했듯이 가용자본을 늘리려는 보험사들은 너도나도 발행 시장에 등장했다.

보험사의 자본증권 발행을 두고 금융당국은 이를 '언 발에 오줌 누기'식 해결이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본격적인 금리 상승기의 증권 발행은 적잖은 금융비용이 드는 일시적인 방편일 뿐이며 문제를 해결하는 정공법은 유상증자임을 암묵적으로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식보단 부채를 활용하는 금융비용이 여전히 낮은 상황에서 자본증권은 보험사의 당연한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스텝업' 가능한 보험사 신종자본증권, 희소성 커졌다

보험 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는 새 회계제도 IFRS17과 맞물려 보험사들은 내년부터 신(新) 지급여력기준(K-ICS·킥스) 감독 체제로 들어선다. 킥스는 보험사 가용자본이 요구자본 대비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측정하는 규제로 현재 RBC비율의 대체재다.

IFRS17과 킥스 모두 자본 건전성을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보험사는 더 많은 자본이 요구된다. 특히 RBC 체제에선 단순한 위험계수방식을 적용해 측정했던 보험·시장·신용·운영리스크 중 보험(생명·장기손해)과 시장리스크에 한해 충격시나리오 방식을 적용함에 따라 킥스 적용시 요구자본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킥스 체제에서 금리 상승기 피할 수 없는 채권평가손실은 가용자본을 압박하는 주된 요소기도 하다. 최근 보험사들의 실적 부진과 잘못된 채권 재분류로 인한 손실 역시 부채성 자본증권 발행을 부추기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보험사들이 과거 발행했던 자본증권의 콜옵션 행사 가능 시점이 본격적으로 도래한 점은 차환 수요에 따른 자본증권 발행을 늘린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에 킥스는 전면 도입에 앞서 연착륙을 위한 경과조치가 마련됐다.

신종자본증권과 후순위채에 은행 같은 손실흡수력 요건이 강화된 자본증권을 요구자본의 15%까지 기본자본으로 인정해 주는 게 대표적이다. 이는 앞서 조건부자본증권만 요구자본의 15% 내에서 기본자본으로 인정키로 했던 것보다 완화된 조치다. 비 조건부 자본증권도 포함돼서다.

결국 내년부터 도입되는 킥스 체제에서 신종자본증권은 보완자본으로 인식된다. 기본자본으로 인정되려면 스텝업(step-up) 금지 또는 상각형 발행 신종자본증권이 되는 셈이다.

스텝업 조항은 채권 발행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금리를 올려주는 조건이다. 만기가 긴 채권에 주로 붙는 탓에 금융사의 자본증권에도 일반적으로 적용돼왔다.

킥스 체제에서는 기본자본으로 인정되는 신종자본증권의 경우 스텝업 조항이 금지된다. 투자자 입장에선 금리 가산이나 조기 상환을 유도하는 옵션이 없어지는 셈이다.

시장에서 주목하는 가장 큰 규제차익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정대호 KB증권 연구원은 "스텝업이 포함된 보험사 신종자본증권을 발행 시장에서 투자할 기회는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며 "투자자나 발행자 측면에서 활용할 수 있는 규제차익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보험사들이 후순위채 대비 비싼 발행 비용에도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검토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코리안리재보험과 한화손해보험은 이르면 이달 말, 늦어도 내달 초순께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나선다.

보험사 한 임원은 "신종자본증권은 후순위채보다 발행을 선뜻 꺼내기 어려운 카드지만 향후 달라질 제도에선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며 "금리 면에서 시장의 수요를 확보하기 수월하고 이제는 희소성도 갖게 됐다. 하반기에는 신종자본증권 발행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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