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크로 이벤트에 흥행 좌우, 북빌딩 배정 영향력↑…유연성 제한 우려 심화



(서울=연합인포맥스) 피혜림 기자 = 각국 금리 인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매크로 리스크가 글로벌 조달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예상치 못한 이벤트에 시장 전반이 출렁이는 가운데 한국물(Korean Paper) 시장은 매크로와 윈도우(window)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17일 투자금융 업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가 북빌딩(수요예측) 날짜로 부여하는 윈도우가 최근 한국물 조달 성패를 가르는 결정타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물의 경우 금융당국이 배정한 날짜에 북빌딩을 진행해야 하는 탓에 매크로 리스크보다도 윈도우에 더 얽매이는 모습이다. 시장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윈도우가 한국물 조달의 유연성을 제한한다는 우려가 커지는 배경이다.

◇펀더멘탈보다 윈도우, 시장 변동성 속 조달 성패 결정

한국도로공사는 오는 18일(납입일 기준) 5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본드(144A/RegS)를 발행한다. 11일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진행한 북빌딩 등에서 29억 달러의 주문을 확보한 결과다.

한국도로공사의 이번 조달은 녹록지 않았다. 타이밍 포착 능력이 없었다면 이달 발행이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란 평가마저 나온다. 실제로 북빌딩 전후로 글로벌 시장 전반이 출렁인 탓에 다수의 각국 발행사가 달러채 조달을 미루기도 했다.

한국도로공사는 미국 현지 시장에서의 조달이 재개된 틈을 포착해 가까스로 발행을 마쳤다. 북빌딩 막바지에 이르러 미국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발표되자 이후 조달시장은 다시 문을 닫았다.

한국도로공사가 출렁이는 시장에도 발행에 나선 건 윈도우의 영향이 컸다. 한국도로공사는 이달 10~12일을 윈도우로 확보한 탓에 해당 시일 내 투자자 모집을 완료해야만 했다.

윈도우는 기획재정부가 국내 발행사에 배정하는 통상 이틀여 간의 북빌딩 날짜를 의미한다. 외환위기 이후 외화 부채 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지며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외화채 조달에 나선 국내 발행사는 북빌딩 시기 등이 겹치지 않게 지정된 날짜에 북빌딩을 진행하고 있다.

시장 변동성이 고조되자 윈도우의 부작용이 두드러지고 있다. 금리 인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 등의 매크로 리스크가 시장을 뒤흔들면서 외화채 발행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날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매크로 이벤트가 언제 발생할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발행사의 시장 포착 능력이 중요해졌다.

한국물 발행사는 이틀여로 제한된 윈도우에 맞춰 조달에 나서야 해 매크로 리스크를 회피할 여력이 제한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윈도우에 맞춰 발행을 강행하다 철회하는 곳이 등장하기도 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달 19일 달러채 발행을 위한 북빌딩에 나섰으나 수요 확보가 더딘 탓에 결국 철회를 결정했다.

당시 미국 긴축 정책과 러시아군의 돈바스 공격 등의 보도가 맞물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2018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하던 시기였다. 갑작스러운 매크로 이슈로 변동성이 고조되자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날 발행에 나서는 미래에셋증권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윈도우 일정에 얽매인 발행사의 압박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윈도우에 따라 뒤이어 달러채 발행을 준비했던 KB국민카드와 부산은행 등은 시장이 안정되지 않자 결국 투자자 모집에 나서지 못했다. 지정일 내 북빌딩에 나서지 않을 경우 기획재정부로부터 다시 윈도우를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서 조달 차질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시장 관계자는 "이틀여씩 북빌딩 일자를 배정하는 시스템이 시장 호황기에는 유효했지만, 지금처럼 변동성이 큰 환경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모습"이라며 "발행사에 일정 수준의 조달 유연성을 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환경 변화에도 제도는 제자리, 시장 성장 저해 지적도

최근 한국물 발행사가 매크로 환경은 물론 윈도우 리스크까지 걱정하는 배경이다. 수년간 이어졌던 저금리발 한국물 호황기가 막을 내리고 금리 인상기로의 전환이 본격화된 만큼 발행사에 시장 변동성에 대응할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윈도우의 경우 각국의 움직임을 고려해도 상당히 강한 제약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일례로 당국의 개입이 막강한 곳으로 꼽히는 중국조차도 외화채 북빌딩 날짜 제한을 분기 내로 제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더욱이 한국물의 경우 글로벌 채권시장 내 상당한 입지를 쌓아왔다는 점에서 윈도우의 역할 역시 줄어들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신용등급이 AA급으로 올라선 후 한국물 발행사들은 안전자산으로서의 입지를 구축하며 투자자들과 탄탄한 신뢰를 쌓아왔다. 수년간 이어진 꾸준한 발행으로 조달시장에서의 소통을 이어간 점 등도 이를 뒷받침했다.

시장 내 입지와 조달 노하우를 갖춰나간 만큼 금융당국이 외환위기 시절의 조달 우려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과거의 경우 한국물 발행기관이 현재처럼 많지 않았던 데다 시시각각 시장 환경이 바뀌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현재 글로벌 시장은 상당한 변화를 맞았지만, 한국물 시장은 윈도우 등의 과거 규제에 가로막혀 성장이 제한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ph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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