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미 기자 = 일본 엔화의 약세가 심화하면서 달러-엔 환율이 140엔까지 넘보고 있다. 달러-엔은 지난 4월 말 '마지노선'처럼 여겨졌던 130엔을 돌파하면서 2002년 4월 이후 최저로 떨어졌으나 두 달도 채 안 되는 사이에 5엔이 더 떨어지면서 135엔선마저 깨졌다.

연초부터 전방위적인 달러화 강세 흐름이 나타난 데다 최근 몇 달 사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긴축 정책을,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은 초완화정책을 한층 강화하면서 양국 간의 금리 및 정책 격차가 더욱 확대돼 엔저의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엔화의 약세를 저지할 요인이 별로 많지 않다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BOJ가 수익률 곡선 통제(YCC)를 중심으로 하는 초완화정책을 중단하기 전까지는 약세를 저지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달러-엔 환율 추이
(자료:연합인포맥스)

 

 

 

 

 


◇ BOJ, 나 홀로 초완화정책 고수…고유가도 직격탄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연초 115엔 수준이었던 달러-엔은 지난 11일 136엔을 돌파하며 엔화는 올해 들어 약 18%가량 절하했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격차가 확대되면서 엔화의 매도세가 촉발되고 있으며, 에너지를 주로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고유가는 일본의 무역적자를 악화시키면서 달러화 유출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특히 엔화는 최근 2개월 사이 BOJ가 통화정책을 동결한 직후 급락세를 연출했다.

지난 4월 28일 일본은행이 단기금리 목표치를 마이너스(-)0.1%로 유지하고 10년만기 국채를 계속 무제한 매입하겠다고 밝힌 이후 달러-엔은 한때 2% 넘게 오르면서 131엔까지 올라섰다.

이후 6월 17일 열린 회의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중앙은행 목표치인 2%를 넘어섰음에도 초완화정책을 유지하면서 엔화는 2%가량 급락하면서 135엔 부근까지 약세를 나타냈다. 이에 앞서 달러-엔은 135엔을 돌파했었다.

지난 15일 BOJ가 국채를 무제한으로 매입하는 '지정가 매입 오퍼레이션'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BOJ는 장기금리를 0.25% 이하로 억제하는 정책을 펴면서 10년물 국채를 0.25%의 고정금리에 무제한으로 매입해왔다. 여기에다 7년물 국채까지 매입 대상을 확대한 것이다.

2주 전에는 BOJ가 10년물 금리 목표치를 방어하고자 일본국채(JGB)를 약 11조엔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매입했다. 이는 극심한 위기나 시장의 혼란 상황에서나 기대할 수 있는 매입 규모라고 MUFG은행의 데릭 헬퍼니 헤드는 진단했다. BOJ가 YCC를 끝내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는 시장 일부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것이다.

 

 

 

 

 

 

 

 

10년물 미국채와 일본국채의 금리 격차(좌). WTI 선물 추이(우)
(자료:연합인포맥스)

 

 

 

 

 


10년물 미국채와 일본국채 수익률 스프레드는 올해 들어 꾸준히 확대됐다. 10년물 미국채 수익률이 연초 1.5%에서 최근 3.5%까지 오르는 사이 연초 0% 수준을 보였던 10년물 일본국채 수익률은 0.2%대로 오르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수익률 스프레드가 반년 사이 1.5%에서 3%포인트대로 급등한 것이다.

국제유가 역시 올해 들어 급등세를 보이면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연초 배럴당 75달러였던 것에서 최근 100달러 위에서 거래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130달러까지 올랐다. 이는 에너지를 거의 수입에만 의존하는 일본의 무역수지에 악영향을 초래했다.

실제 5월 일본의 무역적자는 2조3천846억엔(약 22조8천억원)을 기록해, 10개월 연속 적자를 이어갔을 뿐만 아니라 적자폭은 사상 최대였던 2014년 1월(2조7천951억원) 다음으로 컸다.

크레디트아그리꼴(CACIB)은 일본이 우크라이나 위기로 가장 부정적인 교역 충격을 경험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주요 10개국(G10) 경제 가운데 제조업에서 서비스 활동으로의 전환에 가장 혜택을 덜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또한 봉쇄를 겪은 중국의 경기 둔화로 인해 매우 큰 충격이 예상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고 CA는 지적했다. 결국 일본 경제를 둘러싼 상황 역시 엔화에는 지속적으로 부정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 BOJ 정책 언제 바뀔까…환시개입 가능성은

동아시아 전문 유명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은 지난 15일 닛케이아시아 기고를 통해 달러-엔이 150엔까지 미끄러지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을 밝혔다.

달러-엔이 135엔까지 오르면서 엔화가 약세를 보였지만 글로벌 시장이 이를 눈앞에서 무시하고 있으며 BOJ가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주요국 증시의 위험 회피로의 전환을 부채질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13일 BOJ가 110억달러 넘는 국채를 매입하면서 2018년 이후 최대치를 보였다면서 국채시장에 앞다퉈 개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BOJ가 스스로 찾은 함정을 보여준다면서, 더 완화적인 정책에 나설수록 150엔이나 그 위로 오르는 것이 사실상 확실하다고 페섹은 전망했다.

만약 구로다 총재가 엔화를 지원하기 위한 유동성 지원을 철회한다면 채권시장 전체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엔화가 가파른 약세를 보임에도 지금보다 더 떨어질 것이란 전망은 BOJ가 당분간 초완화정책을 고수할 것이란 예상 때문이다.

구로다 총재는 지난 6월 회의에서 "임금 상승을 지속해서 이어가기 위해 금융완화를 끈기 있게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본은 또한 주요 10개국(G10) 국가와 달리 인플레이션과 관련해 가장 적은 압박을 받고 있다.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 5월 2.1%(신선식품 제외) 올라 2개월 연속 2%대를 나타냈다. 중앙은행의 목표치인 2% 위쪽으로 올라섰지만, 통화정책 기조의 변경을 정당화할 수준의 인플레이션이나 임금 상승 압력에는 직면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엔화의 급격한 절하는 인플레이션에 상승 압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의 일본국채 선·현물의 대규모 매도에 나서면서 BOJ가 머지않아 정책을 바꿀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영국의 헤지펀드 블루베이 에셋매니지먼트는 BOJ가 7월과 9월 사이에 초완화 정책을 변경할 것이라면서 엔화 약세가 물가를 끌어올리고 정부에 정치적 골칫거리가 되기 때문이라고 닛케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마크 다우딩 블루베이 최고정보책임자(CIO)는 BOJ가 연내에 YCC 전략을 폐기할 수 있다고 예상하면서 만약 이렇게 되면 일본국채를 매각하는 것이 매력적인 거래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CACIB는 환시 구두개입 단계로 보면 일본은 지금 7단계 가운데 6단계에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환시 개입은 통상 달러-엔이 125엔 위로 올랐을 때 나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본의 환시 개입 사례
(자료:크레디트 아그리꼴 보고서)

 

 

 


MUFG의 리 하드먼 애널리스트는 BOJ가 YCC 정책을 고수하면서 엔화가 추가적인 약세에 취약해졌다고 23일 분석했다. 그러면서 BOJ는 정부가 엔화의 약세를 막기 위해 정책 공조를 요청할 때만 정책 기조를 수정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BOJ가 가장 쉽게 바꿀 수 있는 정책은 10년물 JGB의 수익률 거래 허용 범위의 상단을 높이는 것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상단을 높인다고 해도 해외의 상황에 따라 어느 시점에 이는 다시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하드먼 애널리스트는 지적했다.

smje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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