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노타이를 한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직접 진행한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수도 없이 언급됐다.

31일 발표에서 손 이사장은 임기 마지막 해를 맞아 저평가된 한국 증시를 살리겠다는 거래소 차원의 총력전 한 시간 넘게 설명했다.

손 이사장은 이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거래환경 조성을 위해 파생상품 개장 시간을 15분 앞당긴다고 발표했다.

그간 새 정부 출범 이후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과 맞물려 한국 증시의 저평가를 극복할 방안으로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시장 접근성 개선과 영문 공시 확대, 깜깜이 배당 지급 관행 개선 등이 꾸준히 논의돼왔다.

하지만 파생상품 개장시각 조기화는 시장에 예고된 바 없는 깜짝 발표였다.

이에따라 향후 국내 파생상품시장 개장 시각은 현행 오전 9시에서 8시45분으로 15분 당겨진다.

이는 주식시장 시가가 야간시간의 글로벌 시황 정보를 반영해 변동성을 확대하는 것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다.

손 이사장은 "글로벌 거래소들은 주식 개장 전 파생시장 거래를 통해 주식시장 시가 변동성을 낮추고 있다"며 "파생상품시장의 가격발견 기능을 제고해 주식시장 개장 시점의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아시아 금융 선진국인 홍콩을 비롯해 싱가포르, 일본은 주식시장보다 파생상품시장의 개장 시각이 15~30분 가량 빠르다. 미국과 독일의 경우 사실상 파생상품거래가 온종일 진행되는 만큼 주식시장의 현물거래 가격 변동성을 파생상품 시장이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국내 파생상품시장 대부분은 외국인투자자의 수요가 크다"며 "그간 금융당국 차원에서 파생상품시장 활성화보다는 위축하게 하는 정책이 많았는데, 이번 개장시각 조기화 조치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도 큰 반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날 손 이사장은 금융당국과 함께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시장 접근성을 개선하는 로드맵도 공개했다. 외국인 투자자 등록제도 폐지를 비롯해 통합계좌 활성화, 외국인 장외거래 유연화 등이 그 예다.

거래소 관계자는 "자본시장과 관련한 제도 개선에 글로벌 스탠다드에 걸맞은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평소 많이 하셨다"며 "이번 조치도 그런 차원에서의 결정"이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손 이사장은 지난 2020년 12월 거래소에 온 이래 파생상품은 물론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다양한 성과를 이뤄왔다.

행정고시 33회인 그는 기획재정부 시절 국제금융 라인에서 후배들이 함께 일하고 싶은 선배로 손꼽는 인물이었다. 세계은행 선임이코노미스트를 시작으로 G20기획조정단장 등 선진 금융시장을 오랫동안 봐온 손 이사장은 저평가된 국내 증시가 필요로 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가장 가까이서 봐오기도 했다.

이에 손 이사장은 취임 직후 특정 파생상품의 쏠림 현상을 완화하고 정부의 지표금리 개선을 지원하기 위해 단기금리 선물시장을 개설했다.

이후 탄소배출권 시장을 활성화하고 탄소배출권 선물 도입도 추진했다.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며 성장한 금 시장과 석유 시장 등 일반 상품시장도 적극적으로 육성하며 장외거래정보저장소(TR)가 성공적으로 가동되도록 지원해왔다. 글로벌 거래소 산업의 핵심 성장동력인 중앙청산소(CCP) 사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CCP조직과 인프라도 대폭 확충했다.

주식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 시장조성자의 공매도 관리를 중심으로 한 공매도 제도 개선에 앞장선 것도 그다. 기관과 외국인에 비해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소하고자 개인 투자자의 공매도 접근성도 개선하는 데도 뜻을 함께했다.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선 손 이사장을 국내 주식시장이 레버리지 늪에 빠지지 않도록 구해낸 '수문장'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당초 미국의 TQQQ(나스닥 3배 레버리지) 상품이 인기를 끌면서 국내에서는 레버리지 300%를 활용할 수 있는 상품 출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손 이사장은 최근 국내외 매크로 환경에서 높은 레버리지 상품이 갖게 될 가격 변동성이 시장에 줄 위험을 경고하며 한국판 TQQQ가 출시하는 것을 반대했다는 후문이다.

손 이사장의 경고는 적중했다.

최근 미국 금융당국은 레버리지 비율이 2배를 넘어가는 상장지수펀드(ETF) 상품의 신규 출시를 금지했다. 이로써 서학개미를 중심으로 테슬라와 함께 인기가 많았던 TQQQ와 같은 상품은 더이상 출시되지 못하게 됐다.

또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매크로 상황이 여전히 나쁘고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큰 현시점에서 레버리지 ETF는 단기 트레이딩 목적으로만 유효하다"며 "레버리지 2.5배, 3배짜리 상품이 국내에서 출시됐다면 지난해 개인 투자자들의 곡소리가 엄청났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2023 한국거래소 핵심전략'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3년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핵심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2023.1.31 mj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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