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자사주의 약 5%, 주주가치 제고 위해 '조기 소각'
남은 자사주 경영권 방어·지배구조 개편 등에 활용 가능성

(서울=연합인포맥스) 유수진 기자 = 삼성물산이 자기주식 130만주 소각에 나서 눈길을 끈다. 2020년 4월 280만주를 소각한 이래 약 3년 만이다.

그간 삼성물산은 자사주 보유량이 많다는 지적에도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삼성그룹의 지주사 격이라는 위치를 고려할 때 자사주 보유만으로 혹시 모를 경영권 분쟁 등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사실상 소각 결정 자체가 쉽지 않은 셈이다.

그렇다면 이번엔 왜 결단을 내렸을까.
◇반대주주로부터 매수한 물량, 5년 내 소각 '필수'

3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지난 1일 오후 이사회를 개최하고 '자기주식 소각의 건'을 승인했다.

대상은 자사주 129만5천411주(보통주)다. 과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간 합병을 반대했던 주주(일성신약)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작년 2분기 취득한 물량이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던 결정이다. 현행법상 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확보한 주식은 5년 내 소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소각을 삼성물산의 100% 자발적 의사로 보긴 어렵다는 의미다.

물론 주주가치 제고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움직였다고 볼 수는 있다. 자사주 소각은 주당순이익(EPS) 개선으로 이어져 최고의 주주친화책으로 꼽힌다.

삼성물산 측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에 따라 취득한 자사주 조기 소각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 목적"이라고 밝혔다.

[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이번 소각 물량은 전체 자사주 보유량의 5.2%로 많은 편은 아니다.

삼성물산은 현재 보통주 2천471만8천99주, 우선주 15만9천835주를 보유하고 있다. 보통주 기준 발행주식총수의 13.2% 수준으로 상당하다. 2012년 삼성에버랜드 시절부터 꾸준히 매입해온 결과다.

지분율만 놓고 보면 개인 최대주주인 이재용 회장(3천388만220주·18.13%) 다음이다. 2대 주주인 KCC(9.1%)를 4%포인트(p) 이상 앞선다.


◇주가하락에도 '신중'…지배구조 개편 앞둬

이에 삼성물산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적극적으로 자사주를 소각해야 한다는 주주의 요구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증권가에서도 "자사주 소각 여부가 주주환원정책의 결정적 변수"라는 진단이 쏟아졌다.

특히 주가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며 이러한 목소리가 더 커졌다. 2015년 9월 재상장 첫날 16만3천원이었던 주가는 현재(2일 종가) 11만5천300원이 됐다. 7년 반 새 30% 가까이 빠졌다.

삼성물산 주가 흐름(2015~2023)
[출처:연합인포맥스]



하지만 삼성물산은 신중했다. 사실상 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삼성그룹은 '이재용 회장 등 오너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회장 등 오너일가가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로 있으며 그룹 전반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형태다.

기업 입장에서 자사주는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꺼낼 수 있는 카드다. 향후 필요시 우호세력에 넘겨 우호 의결권을 확보할 수 있다. 의결권이 없어 주식 총량 대비 대주주의 의결권을 강화하는 효과도 낸다. 지배력 강화에 보탬이 된다는 의미다.

자연히 자사주 소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삼성물산은 이번과 마찬가지로 지난 2020년에도 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취득한 물량만 소각했다. '최소한'의 소각인 셈이다.

심지어 과거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공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현재 지분구조를 고려할 때 과거의 악몽이 되풀이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렇다고 굳이 적극적으로 자사주 소각에 나설 이유는 없다.

특히 이날 취임 100일을 맞은 이 회장은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다.

지주사 체제 전환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해 최적의 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자사주를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장에선 '배당 확대' 예상…자사주 계획은

삼성물산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고민도 지속하고 있다. 사실 오너일가가 주요 주주인 만큼 배당 등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재원 마련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조만간 2023~2025년 배당정책 및 잔여 자사주 11.9% 계획 등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지배주주 일가 상속 개시로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한 배당 지급 강화가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이 회장 등은 삼성물산 주식을 상속세 해결 등을 위해 활용하고 있다.

오너 일가 삼남매는 보유 주식을 서울서부지방법원에 공탁한 채 상속세를 연부연납 하고 있다.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은 담보 대출도 받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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