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지속되면 개별 자산 문제가 아니다"

(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국민연금도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방어할지는 고민이 깊은 부분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저물가 환경이 자리 잡으면서 국민연금도 기금운용에서 인플레이션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던 측면은 있다. 저물가 상황에선 인플레이션의 헤지 유무가 투자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5%를 넘으면서 이제는 얼마나 인플레이션을 잘 방어하느냐가 수익률과 직결되는 상황이 됐다. 시장에서도 국민연금이 인플레이션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대체자산으로 인플레 일부 방어

현재 국민연금이 인플레이션 헤지 자산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플레이션 방어를 위해 국민연금은 부동산과 인프라 등 대체투자 자산을 늘리고 있으며 소량의 물가연동채권에도 투자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 물가연동국채 투자액은 8천500억원 정도다. 국민연금의 국내채권 투자액 가운데 0.28%, 국고채 투자액의 0.67% 수준이다.

이같은 비율은 국민연금의 벤치마크에서 물가채가 그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국내채권 부문에서 자체 설계한 벤치마크(Customized Index)를 사용하는데 이 벤치마크는 사전에 정해진 기준에 따라 편입할 개별 종목들의 모집단을 정하고 이를 이용해 산정된다. 국내 시장에서 전체 국고채 중 물가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 국민연금도 그만큼 적은 금액만 투자하게 되는 셈이다.

대신 국민연금은 대체투자로 인플레이션을 헤지하는 전략을 쓴다. 소비자물가상승률(CPI)이 오를 때 부동산 가격과 임대료 등이 대체로 같이 오르는 특성을 이용한 투자 전략이다.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국민연금은 부동산에 전체 기금자산의 5.2%인 46조4천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인프라 투자규모는 기금자산의 4.3%인 38조5천억원이다. 두 자산군을 합해 기금 자산의 9.5%인 84조9천억원이 인플레이션 방어적 성격도 갖는 자산에 투입되고 있다.

부동산과 인프라가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투자라는 점은 두 자산군의 성과평가 벤치마크 구성성분에서도 드러난다.

국내부동산 벤치마크지수에는 영국 부동산 투자 분석업체 IPD가 만든 IPD한국지수와 국내 CPI 실제치가 계산식에 포함된다. 인프라 부문에서도 국내는 5년 평균 CPI 상승률에 3%, 해외는 원화 헤지 기준 주요 7개국(G7) 5년 평균 CPI 상승률에 4%를 더한 수치를 올해부터 벤치마크로 두고 있다.

부동산과 인프라의 장기수익률 목표 벤치마크에도 각각 임대성장률과 배당성장률이 산입되는데 여기에도 국제통화기금(IMF)의 CPI 전망치가 들어간다. 국민연금의 부동산 및 인프라 투자에는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인플레이션 헤지 성격이 담긴 것이다.

◇제도·운용 입장 차…벤치마크 먼저 개선돼야

국민연금도 이처럼 인플레이션 방어 전략을 쓰고 있지만 한계는 있다. 기금운용의 제1 목표는 벤치마크 수익률을 상회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 대체 자산을 제외하면 물가상승률은 최우선 고려사항은 아니라는 점이다.

원종현 국민연금 상근전문위원은 "국민연금이 근원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전면 헤지한다고 볼 수는 없다"며 "인플레이션은 대체 자산에서 주로 맞추고 있지만 현재 기금운용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닌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플레이션을 두고 국민연금 내부적으로도 연금 수급을 관할하는 제도 부문과 자산을 굴리는 운용 부문의 입장이 다르다. 제도 부문은 물가상승률에 맞춰 매년 연금지급액이 달라지기 때문에 물가를 고려할 수밖에 없지만 운용 부문은 일단 벤치마크를 웃도는 게 당면 과제이기 때문이다.

원 위원은 "제도와 운용은 입장이 다르다"며 "제도 부문은 물가에 맞춰 연금지급액이 커지는 부분을 고려해야 하는데 운용 부문은 현재 지침상 일부 대체투자 자산군 외에는 물가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같은 입장 차이로 국민연금의 자산과 부채가 미스매칭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운용 부문이 인플레이션 헤지에 대한 개선 없이 지금처럼 벤치마크만 웃돌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물가 상승에 따른 연금지급 상승분을 감당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지난해처럼 향후 몇 년간 물가상승세가 강할 것이라는 예측이 이어지는 상황에선 국민연금 전체적으로 인플레이션 헤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는다.

원 위원은 "국민연금이 인플레이션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고 이에 대해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기금본부의 미션은 현재 벤치마크 대비 초과 수익률을 내는 것인데 이를 인플레이션 헤지 쪽으로 제시하는 등의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국민연금이 인플레이션 헤지를 더 고려한다면 물가채 같은 일부 자산을 더 매입하는 문제가 아니라, 지침과 벤치마크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민연금 외부 관계자는 "인플레이션이 지금처럼 높은 수준이 지속된다면 단순히 물가채를 더 사고 말고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며 "그것보다는 벤치마크를 어떻게 근본적으로 재설정할 것이냐의 문제가 우선이고 개별 자산 매입은 그다음 수순"이라고 말했다.

원 위원은 "현재 기금운용본부가 물가채를 산다면 그것은 물가상승에 대한 헤지보다는 물가채 자체의 수익률이 더 높아서일 것"이라며 "인플레이션을 담은 인덱스를 기금위 차원에서 제공해야 운용 방향도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공단


jh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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