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종화 기자 = 작년 국민연금의 저조한 운용 성과가 안타깝게 회자되는 가운데 물가연동국고채(물가채)에 대한 투자 확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고(高)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전망 때문이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와 미·중간의 대립으로 상징되는 지역적 '분절화(Fragmentation)'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다.

이에 따라 물가 상승을 헤지하기 위한 국민연금의 투자 전환이 시급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21일 국민연금에 따르면 연금은 기금운용지침 6조에서 장기 운용수익률이 '실질경제성장률+소비자물가상승률±조정치'를 달성하도록 노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따라잡기 위한 노력이 벤치마크에 어느정도 반영돼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지침 별표2를 보면 국민연금은 자체 설계한 벤치마크 지수(Customized Index)를 사용한다. 여기에 물가채 투자도 일부 들어가지만, 그 비중은 국고채 투자액의 0.67% 정도에 그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지침


작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1% 급등한 상황에서 충분한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이 없는 국민연금은 최악의 성과를 기록했다.

국민연금의 작년 운용 수익률은 마이너스(-) 8.22%였고, 1년간 손실금은 79조6천억 원에 달해 연말 기준 적립금이 890조5천억 원으로 떨어졌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 국민연금의 수익률 제고를 위한 특단 대책을 주문한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민연금의) 작년 수익률이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큰 손실이 발생했다"며 "국민연금공단의 기금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강조한 바 있다.

저조한 성적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글로벌 통화 긴축으로 시장 상황이 어려웠던 영향이 컸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인플레이션을 미리 헤지했다면 결과가 달랐을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연합인포맥스가 입수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만기 10년 기준 국고채에만 투자하는 경우에 비해 물가채에 배분을 확대(국고채 95%, 물가채 5%)했다면 국민연금이 작년 채권투자 부문에서 0.5%포인트 더 우월한 수익률을 낼 수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채는 물가가 오르는 만큼 지급해야 할 원금과 이자가 늘어나는 구조를 가진 채권이다.

국민연금이 운용하는 자산의 막대한 규모를 고려하면 0.5%포인트 차이는 절대 작지 않다. 채권에 300조 원을 투자했다고 가정하면 물가채를 포트폴리오에 포함한 경우 1조5천억 원의 성과를 더 냈다는 얘기다.

만약 해외 사례를 따라 채권 투자 중 일부가 아니라 전체 자산의 일정 부분을 물가채에 배정했다면 투자 성과는 훨씬 더 크게 개선됐을 것으로 보인다.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은 전체 자산의 5%를 물가채에 투자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자산 890조 원에 이 비율을 대입하면 물가채에 투자해야 할 액수는 44조5천억 원에 달한다.

이 밖에 노르웨이국부펀드는 작년 채권 투자 중 6.6%를 인플레이션 연계 채권에 배분했고, 영국 연금보호기금(PPF)은 전체 투자자산 대비 물가연동국채 비중을 2021년 1.9%에서 2022년 2.7%로 확대했다.

글로벌 연기금이 물가 헤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가운데 국민연금은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는 상황이다.

작년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1%였고, 올해 전망치는 3.5%다. 물가가 일부 잡힌다고 해도 과거와 같은 저물가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하다.

글로벌 공급망의 파괴와 친환경 ESG(환경·사회적 책무·기업지배구조 개선) 전환에 따른 원자재 가격 변동성 확대, 각국 정부의 복지 지출 증가 등 물가 상승 요인이 기조적으로 계속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물가채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오는 이유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국민연금의 물가채 투자 논의는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하면서 앞으로 인플레이션은 상당히 높은 수준에서 변동성을 나타낼 것"이라고 말했다.

오 학회장은 "경제 전반을 보고 물가채에 투자하거나 부동산 등 대체투자를 판단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전문 투자역이 국민연금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j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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