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종화 기자 = 국민연금이 인플레이션 헤지를 위해 본격적인 투자에 나선다면 그 장(場)은 물가연동국고채(물가채) 시장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아직 국내 물가채 시장은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단계에 머물러있다. 이에 따라 수요측인 연기금과 공급측인 당국이 시장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2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작년 물가채는 한 달에 1천억 원꼴로 발행됐으며, 2022년을 통틀어 총 1조1천억 원 공급됐다.

총자산이 약 900조 원인 국민연금 한 곳만 투자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자산의 5%를 물가채에 투자하는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 사례를 국민연금에 적용해보면 국민연금은 45조 원 규모의 물가채가 필요하다.

현재 물가채 시장의 상황은 다소 암담하다고 할 수 있다. 국민연금 및 여타 연기금의 수요가 저조한 가운데 증권사 등 다른 기관들 역시 물가채에 큰 관심이 없는 상태가 수년째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공급측인 정부는 물가채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낮았기 때문에 당분간 수요를 점검하면서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가진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정부 재원이 세수 이외에는 국고채 발행을 통해 조달되는 만큼 물가채 수요가 존재한다면 발행을 거부할 특별한 유인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물가채의 수요와 공급이 모두 활발하지 않다는 얘기다. 현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큰 형님 격인 국민연금이 먼저 물가채 투자에 나서면 다른 연기금들도 점차 동참하면서 물가채 수요가 살아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시장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물가채를 사기 시작하면 다른 연기금들도 투자에 나설 것"이라며 "일단 시장이 활성화되기 전까지는 당국이 국민연금에 직매하는 방안도 타당해 보인다"고 말했다.

물가채 시장이 활성화되면 정부와 금융시장은 손익분기 인플레이션(BEI)의 발견이라는 혜택도 누릴 수 있다. BEI는 금융시장이 전망하는 기대 인플레이션으로 국고채와 물가채 금리의 차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대인플레이션 지표는 한국은행이 조사하는 1년 기대인플레이션 외에 마땅한 지표가 없는 상황이다. BEI는 그동안 물가채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아 정확한 지표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설문 조사 형식의 기대인플레이션 통계는 조사 과정의 시간적 지연으로 적시성이 떨어지고 모집단의 정확성에도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BEI는 이런 단점으로부터 비교적 벗어난다는 장점이 있다.

향후 물가채 시장이 성장하면서 BEI가 정확한 현실을 반영하게 될 경우 재정·통화 정책의 결정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금융시장의 다른 한 관계자는 "물가채가 활성화되면 BEI를 발견해낼 수 있어 시장의 기대인플레이션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며 "정부도 조달 수단 다변화를 통해 국고채 발행의 안정성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BEI 추이
연합인포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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