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과 가스공사는 12일 전남 나주와 대구에서 임직원을 모아 놓고 적자 극복 결의대회를 열었다. 240여㎞ 이상 떨어진 곳에서 열린 두 대회였지만 내용은 사실상 같았다. 강력한 혁신 의지를 바탕으로 자구노력을 이행하고 재무 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하자는 내용이다.
처방도 비슷했다. 투자를 줄이거나 늦추고, 직원 채용은 동결하고,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간부들은 임금 인상분을 반납하거나 부분 반납하는 게 핵심이다.
두 공기업이 처한 현실을 보면 마른 수건을 짜내는 이런 방안들이 나오는 것을 이해할 수도 있다.
가스공사는 전일 발표한 1분기 실적에서 도시가스 미수금이 11조6천억원으로 10조원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증권가에서는 도시가스 요금 인상 없이는 미수금 증가를 멈출 수 없을 것으로 봤다. 최소 5%는 올려야 미수금 규모를 작년 말 수준에서 멈춰 세울 수 있고 증가세를 멈추려면 15~20%는 올려야 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한전의 상황도 녹록잖다. 작년 영업손실이 32조원을 넘어섰다. 과거 연간 영업손실이 최대치였던 2021년(5조8천465억원)의 5.6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적자를 메우기 위해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다 보니 채권시장 금리가 급등하는 부작용까지 초래할 지경이었다.
국내 대표 알짜 공기업인 두 회사가 왜 이렇게 됐을까. 모두가 알다시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탓이다. 천연가스 가격이 세 배, 네 배 오르면서 유럽이 에너지 위기에 봉착했을 때 우리나라가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두 공기업이 인상폭을 모두 떠안았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이후 우리나라(붉은색), 미국(파란색), 유럽연합(EU, 녹색)의 소비자물가지수 추이를 살펴보면 EU가 10%, 미국이 9%까지 치솟을 동안 우리는 6%대에서 방어할 수 있었다.
미국과 EU 같은 선진국마저 에너지 가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두 자릿수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고물가에 시달리는 동안 우리가 그나마 선방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에너지 공기업이 천문학적인 적자를 감수했기 때문이다. 한전과 가스공사의 대규모 적자는 국민을 대신해 고물가 충격을 흡수한 대가인 셈이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한전의 인건비는 1조9천억 원 초반에서 변동이 없었다. 가스공사는 2020년 3천872억 원에서 2021년 3천666억 원, 2022년 3천496억 원으로 줄어들다 올해 처음으로 3천872억 원으로 예산을 증액 편성했다.
주주의 뜻을 따라야 하는 임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직원들에게까지 급여 삭감을 강요하는 게 제대로 된 처방인지 의문이다. 두 공기업의 적자가 미래를 위한 투자를 미루고 알짜 자산을 헐값에 매각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어설픈 퍼포먼스가 아니라 정부와 여당이 국민들에 대규모 적자 이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다.
spnam@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3시 32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남승표 기자
spna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