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장용욱 기자 = 지난주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인 'CES 2012'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서 기자는 우연히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을 마주쳤다.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는 이 사장에게 전시회를 둘러본 소감을 물었지만, 그는 "다음에 합시다"는 말만 남기고 성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어서 다른 사진기자가 다가가자 손을 내저으며 사진 찍히는 것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나타냈다.

이 사장은 이 외에도 CES 행사기간 동안 몇 차례 한국 취재진의 눈에 띄었지만, 그때마다 별다른 말 없이 바로 자리를 피했다.

그나마 유일하게 CES 개막일인 지난 10일(현지시각) 오전에 삼성전자 부스를 찾았다가 취재진 앞에 섰지만, 그때도 "미팅의 연속이다"는 짧은 말만을 남기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이처럼 이 사장은 CES 행사기간 동안 공식석상에는 최대한 노출되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 등 오너 일가는 물론이고, 최지성 부회장과 윤부근 사장 등 삼성의 주요 인사들이 언론에 많이 노출됐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러나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다고 해서 이 사장의 활동이 적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삼성의 고위 관계자 중 누구보다도 바쁜 일정을 보냈다.

이 사장은 외국 바이어(buyer)와의 미팅 스케줄 때문에 이 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등보다 앞서 민항기를 타고 먼저 라스베이거스로 넘어왔다.

또, 현지에 도착해서도 폴 오델리니 인텔 최고경영자와 아이티(IT) 전문 벤처캐피털사인 레드포인트벤처스의 대표 등 수많은 인사와 잇따라 회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현지에서 취재진과 잠시 마주친 이 사장이 직접 보여준 자신의 일정표에는 미팅 일정이 시간 단위로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또 전시장 주변에서 발견될 때마다 이 사장은 항상 빠른 걸음으로 다음 일정을 향하고 있었다.

매년 열리는 CES는 단순한 전시회가 아니라 업체 관계자들 간의 수많은 접촉이 이뤄지는 행사로 꼽힌다.

따라서 최고운영책임자(COO)로서 거래처와의 미팅을 주도해야 하는 이재용 사장이 어찌 보면 CES에서 삼성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사장이 CES에서 중요한 일을 맡았음에도 언론에 거의 노출되지 않은 것은 자신이 세간의 관심을 받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 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0월 스티브 잡스 추도식에 참석했다가 귀국하는 길에 애플과의 소송전에 대해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소비자를 위해 페어플레이를 하면서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이전과 다르게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힌 것을 두고 이 사장이 경영 전면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줄을 이었다.

또, 지난 2일에는 이 사장이 이 회장과 같은 차를 타고 신년하례회 행사장에 도착하는 모습이 언론에 잡히자, 삼성 내에서 이 사장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는 평가가 크게 주목받았다.

그러나 삼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 사장은 최근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경영권 승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식으로 오해를 받았다"며 "하지만 여전히 이 사장은 후계 수업을 착실히 받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다른 고위 관계자는 "이 사장은 아버지가 여전히 건재한 상황에서 삼성의 오너가 당장 자신으로 바뀔 것처럼 비치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 한다"며 "이 때문에 언론 앞에 서는 것을 더욱 조심스러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yujang@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