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미란 기자 = 시중은행에 근무하는 A씨는 외환 관련 부서로는 될 수 있으면 옮기지 않을 계획이다. 외환 업무는 리스크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A씨는 "여신보다 외환이 훨씬 위험하다"며 "주변에서도 외환 업무는 다들 기피하는 추세다"고 말했다. 은행원들이 외환 업무를 꺼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올해 들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인하와 사회공헌 확대 요구로 순이자마진(NIM)이 급락하면서 은행권은 수수료 수익과 같은 비이자이익에 눈을 돌리고 있다.

수수료 수익 중 원화수입 수수료는 은행권이 사회공헌의 하나로 자동화기기(ATM)와 카드 수수료를 내리고 여신 관련 수수료를 폐지하면서 늘기 어려운 상태다. 반면 외화수입 수수료는 주로 기업을 대상으로 해 사회공헌 확대 요구에서 비켜나 있다.

이에 주요 시중은행은 외환 사업 부문 강화에 한창이다. 이는 은행장들의 발언에서도 읽힌다.

김종준 하나은행장은 "외환영업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으니 적극적인 관심을 두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순우 우리은행장은 "외환 부문의 시장 지배력과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며 "전행 차원의 마케팅 집중으로 시장 지배력과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용로 외환은행장 역시 "외환은행의 막강한 경쟁력의 원천은 외국환 등 핵심역량 분야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은행 차원의 방침에도 은행원들은 외환 업무를 꺼리고 있다. 신용장(L/C) 발급 등의 외환 업무는 여신과 달리 승인 절차가 간략해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여신업무시 은행은 대출상담과 접수, 신용조사, 여신심사, 여신승인 등의 절차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심사역과 전문심사역, 심사역협의회, 여신협의회 등의 승인이 필요하다.

반면 신용장 발급은 승인 절차가 한두 단계로 간단하다. 수출입은 신속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은행은 여신을 실행한 후 차주의 신용상태를 살펴가며 신용등급 조정이나 대출 회수, 경영지도 등 사후관리에 들어간다.

그러나 신용장은 대부분 취소 불능(irrevocable)이라 승인 이후 부실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아도 손을 쓸 수 없다. 즉, 선하증권이 위조되거나 신용장 승인 조건에 맞지 않아도 대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통상 담보를 잡는 여신과 달리 외환 업무는 신용 거래가 대부분이기도 하다. 기업의 신용만 믿고 거래하다 보니 사고가 잦다. 올해 초 우리와 기업, 농협은행이 선하증권 위조로 의심되는 신용장 사고로 110억원 가량 손실을 본 경우가 대표적이다. 여신은 부실이 발생하면 담보를 통해 채권 보전에 나설 수 있지만 외환은 고스란히 떼이고 만다.

여기에 최근 외환 업무를 강화하고 성과를 올리려는 은행간 경쟁이 붙으면서 기업이 은행에 불리한 조건을 내걸거나 제반 서류가 부실해도 신용장 개설을 거부하기 어려워졌다.

A씨는 "은행에 불리한 조건, 예를 들어 국외 양도가 가능하고 제시기일이 없어 언제든 네고할 수 있는 신용장이라도 승인할 수밖에 없다"며 "수익에 대한 압박 때문에 서류를 깐깐하게 보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고 토로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우리와 기업, 농협은행이 110억원을 떼인 데서 보듯 기업이 작정하고 사기를 치면 은행은 당할 수밖에 없다"며 "은행으로서는 속수무책일 것이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은행이 당장 눈앞의 수익을 놓치더라도 신용장 관리 업무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신처럼 신용장 승인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거나 영업점에서 놓칠 수 있는 서류상 미비점을 본점에서 검토해 사고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외환 업무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은행권 관계자는 "국내 시중은행에서 외환 업무와 관련된 사고가 잦은 것은 서류를 면밀히 검토하기보다 기업 신용으로 신용장을 개설해주기 때문이다"며 "신용장 사고는 대부분 서류를 정밀하게 검토하면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주요은행의 신용장 업무 담당자들은 해당 업무만 십수 년 째 하는 전문가들이다"며 "기업금융과 외환 업무에는 신용장 전문가가 필수적인만큼 국내 시중은행도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mr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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