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한용 기자 = 올해 3월 신경분리 후 조직정비에 나선 농협이 20년 가까이 유지해 온 과장 승진고시를 폐지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승진고시 제도가 성과주의 문화 확산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판단에서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은 최근 인사혁신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해 중앙회와 계열사를 포함한 범 농협 차원에서 지난 1990년대 중반 이후 임용고시와 자격고시로 이원화해 시행해 온 과장(4급) 승진고시를 없애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승진고시가 인사의 투명성과 공정성 측면에선 장점이 있지만, 조직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먼저 필답고사 위주로 치러지는 승진고시의 폐해다.

농협의 승진고시는 농협협동조합론과 농협법, 실무과목, 회계학 등에 대한 필기시험 방식으로 치러진다.

임용고시는 상대평가로 매년 100명에 못 미치는 인원을 선발한다. 경쟁률이 3~4 대 1에 달할 정도로 난도가 높다. 자격고시는 전 과목에서 60점 이상을 받아야 통과가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조직 성장의 추동력이 돼야 할 중고참급 직원들이 짧게는 1년, 길게는 수년간 승진시험에 목을 매는 상황이 발생했다. 근무 시간에 교제를 보는 일이 다반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업무성과가 인사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점도 문제다.

군필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젊은 5급 직원이 업무수행능력과 상관없이 입사 3년 후 승진고시에 응시해 곧바로 과장을 다는 경우가 있는 반면, 현장에서 뛰어난 실적을 올려도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4급 승진을 하지 못한 채 퇴직하는 사례도 있다.

임용고시 합격자와 자격고시 합격자에 대한 처우에도 차이가 있다.

임용고시 합격자는 2년 내에 4급 과장 직함과 보직을 부여받지만, 자격고시 합격자는 이후 인사고과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야 직함과 보직을 차지할 수 있다. 자격고시를 통과하고도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직원이 2천여명에 달한다.

농협 관계자는 "승진고시 제도에는 장점도 있지만 불합리한 점도 많다"며 "주요 은행들이 대부분 승진시험을 없애고 성과 중심으로 직원들을 평가하는 점을 고려할 때 농협은 제도 개선이 늦었다"고 말했다.

승진고시 폐지 문제는 아직 내부 구성원의 동의를 받은 상태는 아니다.

사측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성과주의에 기반한 '신인사시스템'을 도입하는 문제를 노동조합과 협의할 계획이다. 필요하다면 공청회 등을 통해 구성원의 동의를 얻는 절차도 거칠 예정이다.

농협 관계자는 "자격고시를 통과하고도 보직을 못 받은 직원이 2천명이 넘는 만큼 이들이 제도 변경에 반발하고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농협은 5~7급으로 나눠 직원을 채용한다. 7급에서 5급까지는 연차에 따라 승진하지만, 4급으로 올라갈 때는 승진고시를 치러야 한다. 4급 이상 직원들은 인사평가 결과에 따라 승진 여부가 가려진다.

h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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