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종혁 남승표 기자 = 저축은행이 부실대출을 숨기기 위해 채권회수 목적의 경매를 신청한 뒤 직접 낙찰받는 이른바 '자기낙찰'을 악용하고 있어 감독당국과 저축은행 예금자들의 주의가 요청된다.

11일 법원 경매정보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2008년부터 올해 4월까지 저축은행이 경매를 청구하고 낙찰받은 사례는 모두 1천21건으로 낙찰금액은 9천202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세부 내용을 보면 A저축은행이 128건, 933억 원으로 가장 많은 자기낙찰 사례를 기록했고, 낙찰금액 상위 10위 권 안에는 한국상호저축은행, 토마토상호저축은행, 전일상호저축은행, 미래상호저축은행 등 부실저축은행이 다수 포진했다.

자기낙찰은 88개 저축은행에서1건 이상 조사되는 등 저축은행업계에 만연한 행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기간 제1금융권에 속하는 시중은행은 단 1건의 자기 낙찰 사례도 없는 것으로 조사돼 대조를 보였다.

저축은행이 자기낙찰에 빈번하게 나선 이유는제도적인 허점과 부동산 경기 부진에 있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현행 상호저축은행법에 따르면 저축은행은 담보물인 부동산만 경매에서 낙찰받을 수 있으며 이 때 배당받은 금액은 대출금이 회수된 것으로 처리된다.

이 때문에 대출손실 충당금을 적립하기 어려운 저축은행들이 저축은행법의 예외 규정을 이용, 직접 낙찰받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저축은행은 대출과정의 문제를 덮기 위해 예외 규정을 악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상장폐지가 확정된 한국상호저축은행은 경북 영천의 토지 16만㎡를 경매 신청한 뒤 1회 유찰 뒤 바로 입찰에 참여해 낙찰받았다.

감정가 350억 원의 이 토지는 등기 내용으로 미뤄볼 때 한국저축은행과 3개 계열저축은행이 80억 원씩 비용을 부담한 것으로 파악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1회 유찰 뒤 낙찰받았다면 채권회수 목적으로 경매신청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대출과 관련된 내용을 덮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담보물을 인수하기 위해 추가 비용을 지출한 사례도 있었다.

미래상호저축은행은 8억 원을 회수하기 위해 서울 송파의 한 주상복합아파트를 경매 신청한 뒤 15억 원에 낙찰받았다.

경매 관계자들은 "이 주상복합은 미래보다 먼저 배당받는 채권 7억 원이 있기 때문에 해당 금액만큼 미래가 추가로 법원에 납부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저축은행업계는 이 같은 자기낙찰의 폐해에 대해잘고 있지만뾰족한 대안이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법원 경매는 세 번만 유찰돼도 담보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져 손실을 줄이려면 어쩔 수 없다"며 "유입 부동산을 매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부동산 침체로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직 저축은행 관계자는 "경매에서도 팔리지 않는 부동산이 시장에서 제값에 매각되겠느냐"며 "결국 뒤늦게 처분 손실이 은행 경영에 반영돼 영업정지될 경우 애꿎은 예금자들만 피해를 입는다"고 지적했다.

liberte@yna.co.kr

spnam@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