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종혁 남승표 기자 = 저축은행이 부동산 침체와 제도상의 허점으로 또 한 번 재앙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부실대출을 숨기기 위해 채권회수 목적의 경매를 신청한 뒤 직접 낙찰받는 이른바 '자기낙찰'을 저축은행이 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자기낙찰은 대출 부실의 처리를 지연시키는 데다 유입된 비업무용 부동산이 부실화되면 저축은행의 재무구조에 치명상을 줄 수 있다.

11일 법원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저축은행업계가 구조조정의 회오리에 휘말리던 중에서도 저축은행은 2008년부터 1천21건(9천202억원)에 이르는 자기낙찰에 나섰다.

▲'자기낙찰' 문제없나 = 부동산 경기가 일시적으로 급강하했다면 문제의 소지가 없지만 2007년 정점을 찍은 이후 5년째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부동산 경기가 이제 바닥을 쳤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저축은행이 '자기낙찰'을 받는 순간에는 문제가 사라지는 듯 보였지만 부동산 침체가 더 진행된다면 보유 자산까지 부실해지면서 누적된 위험의 폭발력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회계법인의 한 관계자는 "IFRS상 자산은 늘 시장 거래가치로 평가돼야 하는데 저축은행의 자기낙찰은 가격을 왜곡시킨다"며 "경매에서 자기가 낙찰받아 놓고 그 금액대로 자산을 평가하는 것은 건전성 지표를 속이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저축은행의 한 관계자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지 못해 자산 가격이 더 내려가면 문제가 된다"며 "일찍 도려냈다면 상처가 나을 수 있었는데 그대로 방치해 더 썩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자기낙찰' 사례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유입된 부동산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지켜보고 있다"며 "되도록 1년 이내 처리하게 하고 있지만 안 팔리는 등 어쩔 수 없는 경우 5년까지 허용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자기낙찰' 왜 하나 = 저축은행들은 자기낙찰을 통해 대출손실을 줄이고, 자산증가 효과를 누린다.

일례로 대출가액 100억원짜리 담보 부동산이 경매시장에서 3회 유찰 후 제3자에 40억원에 팔린다면 60억원을 그대로 손실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해당 저축은행이 70억원에 '자기낙찰'을 받는다면 그만큼 대출을 회수한 셈이 되고, 비업무용 부동산이라는 자산도 늘어나게 된다.

저축은행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부동산시장 침체로 담보부동산이 여러 차례 유찰돼 가치가 하락하면 해당 은행은 그만큼 손실을 입는다"며 "이를 피하려고 담보물을 취득한 뒤 시간을 봐서 매각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저축은행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시중은행도 자기낙찰에 나선다. 금융당국도 담보가액보다 낮은 가격으로 받는 자기낙찰을 '유입'이라는 용어로 인정해주고 있다.

금융기관은 법적으로 비업무용 부동산을 취득할 수 없지만 자기낙찰은 허용이 된다. 저축은행은 최근 비업무용 부동산이 급격히 증가한 바 있다.

은행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은행도 원칙적으로는 '자기낙찰'을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며 "매각 시점을 늦춰 얻는 이익보다 관리 비용이 더 드는 데다 손실처리를 늦출 이유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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